한국서 기독교 개종한 이란인…법원, "박해 우려 있으면 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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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한 소도시 노천시장에서 히잡을 고르고 있는 이란 여인들.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 포토]

이란의 한 소도시 노천시장에서 히잡을 고르고 있는 이란 여인들.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 포토]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본국을 떠난 게 아니라, 본국을 떠나온 후 한국에서 개종을 하게 된 경우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이란 출신으로 7년 전 한국에 온 A씨는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게 됐다. 그는 외국인 선교부에 소속돼 꾸준히 교회에 나갔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는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기독교인이 됐다. 그의 출신국인 이란은 국교가 이슬람이고, 그도 무슬림(이슬람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슬람법에 따르면 무슬림이 아닌 자가 무슬림의 개종에 관여하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그가 한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던 해, 이란에서는 79명 이상의 기독교 개종자들을 구금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이상 본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이유다.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오른쪽)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 가운데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이맘 호메이니 초상화.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오른쪽)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 가운데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이맘 호메이니 초상화.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하지만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A씨의 난민인정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가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결국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달 2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차지원 판사는 "그 개종이 진정한 것으로 인정되고, 국적국의 박해 가능성이 인정되면 난민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가 처음 난민인정신청을 낸 지 2년 만의 일이다.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자 했던 서울출입국관리소는, 재판 과정에서 "A씨의 개종 사실이 본국(이란)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박해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 판사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그는 "A씨가 본국으로 돌아가 기독교 개종 사실을 숨기고 생활하면 박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면서도, "종교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종교활동의 자유를 포함한다. 개종 사실을 숨기고 생활하라는 건 종교의 자유를 사실상 포기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봤다. 또 "박해를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종교활동을 해야 하는 것 자체도 종교의 자유에 대한 박해다"고 판결문에 썼다.

지난 1월 AFP 통신이 국제 기독교 선교단체 ‘오픈 도어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한 해 3066명의 기독교인들이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중앙포토]

지난 1월 AFP 통신이 국제 기독교 선교단체 ‘오픈 도어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한 해 3066명의 기독교인들이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중앙포토]

A씨는 기독교인으로서 박해받는 상황을 피해 한국에 온 게 아니라, 한국에 온 다음에 기독교인이 됐다. 차 판사는 이런 부분이 난민을 인정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차 판사는 "스스로 개종해 박해의 원인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발생했다면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를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받고자 할 때, 그 종교를 얼마나 진정하게 믿고 있느냐는 중요한 요소다. A씨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는 "필요와 문제가 있을 때만 교회에 출석하는 외국인들도 있는데 A씨는 빠짐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차 판사는 이런 진술들을 두루 고려해 "A씨가 난민면접에서 일부 기독교 성경에 불일치하는 답변을 했다 하더라도 A씨의 본국에서의 학력이 높지 않은 점이나 한국교회에서 언어적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성실히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질문에 대해 교리에 일치하는 답변을 한 점을 감안하면 A씨 개종의 진정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 1심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한 결정(난민불인정)을 법원이 취소하라고 한 것에 대해 곧바로 수긍하기 어려우므로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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