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국무장관, 워터게이트 자택서 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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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워싱턴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함께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콘돌리자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워싱턴 AP=연합뉴스]

2주 전 일요일인 3월 26일 저녁 콘돌리자 라이스(51) 미국 국무장관의 집(워싱턴 DC 워터게이트 아파트)에서 슈만, 쇼스타코비치, 브람스의 선율이 흘러 나왔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라이스가 같은 음악 애호가인 친구 4명과 함께 실내악 연주를 한 것이다. 슈만의 곡이 끝났을 때 라이스는 "종결부에서 좀 흔들렸다"며 "우리의 자존심을 위해 그 대목을 다시 연주하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흔쾌히 동의했고, 연주를 마친 뒤 "처음보다 낫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라이스의 집에선 2주에 한번 꼴로 5인조 실내악 연주회가 열린다. 3년째 계속되는 행사다. 라이스가 피아노를 치고, 소예 킴(Soye Kim).로런스 월리스(Lawrence Wallace).조슈아 클라인(Joshua Klein)은 바이올린, 로버트 배티(Robert Battey)는 첼로를 켠다.

라이스는 모계로 4대째 피아니스트다. 공업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어머니가 바빠 그는 외할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15세 때 피아노 경시대회에서 입상했고 월반을 해서 덴버대학 음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전공을 국제관계학으로 바꿨다. 이후 피아노를 다소 멀리하다 1993년 스탠퍼드대 교무처장이 된 뒤 다시 레슨을 받았다.

변호사인 킴은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하고 상당기간 연주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 월리스는 법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밤무대에서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은퇴한 대법관 산드라 데이 오코너의 비서였던 클라인은 대학 시절 바이올린을 배웠다. 배티는 미주리 대학에서 12년 동안 첼로를 가르친 음대 교수 출신이다.

라이스는 이들을 "가족과 같은 좋은 친구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솔로로 연주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실내악을 연주하면 마음이 평안해지느냐'는 물음에 "브람스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땀을 흘릴 때면 딱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브람스나 쇼스타코비치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땐 황홀해 진다. 나 자신(의 일)을 잊을 수 있으므로 실내악 연주에 탐닉한다"고 했다. 라이스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F단조. "브람스의 음악은 감상적이지 않고 열정적이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란다.

라이스는 실내악 연주를 정치적 사교나 외교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2003년 그의 집에 대법관 스티븐 브레이어와 루스 베이더 긴즈버거,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이 초대를 받아 연주를 감상했다. 보수주의자인 라이스가 진보성향의 두 대법관을 초청한 건 그의 사교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듬해엔 4인의 친구들을 이끌고 영국 대사관에서 연주를 했다.

미국의 역대 국무장관 가운데 음악을 즐긴 사람은 또 있다.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그랬다. 그 역시 집에서 실내악 연주회를 자주 열었고, 자신은 바이올린을 켰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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