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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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학교 3학년생인 현규는 꿈을 꾼다. 그는 편지가 가득 든 자루를 맨채 오색풍선에 매달린 꽃바구니를 타고 하늘을 훨훨 날아 가고 있다. 남쪽의 이산가족이 북쪽의 이산가족에 보내는 편지들이다.
얼마쯤 날아갔을까. 현규는 똑같은 풍선바구니를 타고무지개 너머에서 나타난 제 또래의 북한소년 광수를 만난다.
『나는 남쪽에서 온 현규야』
『나는 북쪽에서 온 광수야』
『어디 가는 길이냐』
『나는 북폭으로 편지 가지고 간다.』
『어, 나도 편지 가지고 남쪽으로 가는데.』
둘이는 서로 손을 마주잡았다.
『야. 따스하다.』
『그럽 차가운줄 알았니』
현규와 광수는 한바탕 웃고
『우리 이제 자주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 한 채 각자 편지를 전하러 떠났다.
남의 나라 동화가 아니다. 바로 내년 2학기부터 우리 국민학교 3학년 어린이들이 쓸 교과서의 한 대목이다.
지금까지 증오심과 적개심을 유발시키는 반공일변도의 교과서만 대했던 세대들에겐 그야말로 동화같고 꿈같은 이야기다. 정말 엄청난 변화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서독과 동독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다시는 서로 안볼 것 같던 중공과 대만이 가족과 친지의 왕래가 트였다.
걸핏하면 납치극을 벌이던 동구권에 우리 무역상담소가 문을 열고 한국상품전시회를 갖는게 요즘의 형편이다.
무엇보다도 오는 9월이면 공산권을 포함한 세계 1백61개국이 참가하는 인류의 대축제가 서울에서 벌어진다. 「현규의 꿈」이 결코 꿈만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더구나 노태우대통령은 7일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해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이룩하는 민족공동체로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통일 조국을 실현하는 지름길 임을 밝혔다.
그 선언이 실현되면 현규처럼 품선을 타지 않고도 모든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학자, 체육인, 학생들이 자유롭게 남북을 왕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누구를 신처럼 떠받들고, 『땅크 까부수는 것으로 셈공부를 시키는 북쪽의 교과서는 언제쯤 바뀌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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