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훈련원 조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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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학생은 임시훈련생이 됐고 교사는 훈련원의 조교로 전락해 버린 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입니다. 참된 인간이 되기를 가르치는 스승은 없고 단순한 지식만을 전수시키는 조교가 있을 따름인 우리의 교육현실…. 』
제주에서 상경한 김모교사(33)가 입시위주로 치달리는 우리교육풍토의 모순을 고발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일제히 터지는 우렁찬 박수소리.
『성적지상주의의 교육풍토속에서 어린 제자들이 하나둘 숨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교단에 서야하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김교사의 자기반성의 목소리는 장내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우리학생들에게 진짜 보충해야 할 부분은 인격, 정서함양, 체력단련 등을 위한 교육입니다. 그러나 현 보충수업제도는 오히려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자율학습은 명목상의 자율일 뿐 학생들은 「자율의 굴레」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박모교사의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대한 성토에 이어 현행교과제도의 모순에 대한 고발이 뒤따랐다.
『현행 수학교과서의 미적분을 이해하는 학생은 전체의 5분의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수업이 아니라 고문을 받는 격이 됩니다.』
3일 오후 성균관대 금잔디광장. 전국 2천5백여명의 교사들이 모여 개최한 「민주교육법쟁취와 보충수업·자율학습폐지를 위한 전국교사대회」현장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성토와 결의로 이어진 대회가 끝난 것은 오후5시. 교사들은 「참교육을 위한 교사신명풀이 풍물놀이」를 마치고 다음날 수업을 위해 하나둘 자리를 떴다.
『현재의 교과목체제로선 열심히 강의해봐야 학생들에겐 「밥맛」이란 비난만 듣고 전인교육이랍시고 뭘좀 가르치려면 교장·학부모로부터 쓸데없는 짓 한다고 호통이나 받으니 교사노릇 진짜 밥맛이요 밥맛.』 교문을 나서는 한 교사의 탄식어린 푸념이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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