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북한 결핵 퇴치 지원 중단, ‘슈퍼 결핵’ 창궐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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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북한 어린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 유니세프]

아픈 북한 어린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 유니세프]

북한의 결핵 퇴치를 지원해온 한 국제기구가 오는 6월 지원을 중단키로 하면서 세계 의료계에서 기존 의약품에 내성을 보이는 '슈퍼 결핵'의 창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하버드대 의과대학원 소속 전문의들이 북한에 대한 결핵 퇴치 지원이 중단되면 "북한 전역에서 품질이 보장된 결핵 치료제의 막대한 품귀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2월 '에이즈, 결핵 및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기금'(The Global Fund to Fight AIDS, Tuberculosis and Malaria·이하 세계기금)은 2010년부터 이어온 북한의 결핵·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을 오는 6월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원 배치와 지원의 효율성에 대한 보장 및 리스크 관리가 요구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하버드 의과대학원의 의료진은 세계기금에 공개서한을 보냈고 이는 지난달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싯'에 실렸다. 의료진은 치료제 부족 탓에 의료진이 치료제를 배급하고 환자들은 필요한 복용량을 채우지 못하면서 다제내성 결핵균이 급속도로 생겨난 전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 따르면 2016년 북한 내 결핵 환자 13만여명 가운데 5천700명은 결핵 치료제 리팜피신이나 최소 2가지 이상의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한의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연구진이 결핵 환자 수백명의 객담 샘플을 분석한 결과 대상자의 4분의 3 이상이 다제내성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슈퍼 결핵균에 감염된 환자들은 완치되기까지 보통 2년여가량 소요되는데 그러려면 6개월여가량 매일 주사를 맞고 1만4천알의 치료제를 복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약물 복용 기간이 너무 짧거나 저질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은 약물 내성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북한 주민의 만성 영양실조도 슈퍼 결핵의 창궐을 부추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버드 의대 출신 결핵 치료 전문의 제니퍼 푸린은 북한에 대한 지원 중단은 "세계 의료계가 장차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는 정치적으로 발생한 문제로, 향후 북한 주민뿐 아니라 역내 모든 이들의 보건 참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다제내성 결핵균이 북한 밖으로 퍼져나갈 경우 이를 퇴치하는 데 수십년이 걸릴 수 있고 접경국인 중국이나 한국의 공중보건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푸린은 "이것(슈퍼 결핵균)은 그 자체로 살상 무기다. 결핵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다. 그것은 국경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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