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권위, 왜 북한 인권에 침묵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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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영황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어제 국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대한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또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실태 파악을 지속해 나가는 한편, 내부 논의를 거쳐 북한 인권에 관한 입장 표명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북한의 인권 실체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던 인권위가 지금까지도 미적거리기만 하는 딱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탈북 동포가 강제로 송환돼 처형되는 등 북한의 인권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으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며칠 전 유엔 인권위가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는 투표에서 기권했다.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하면 남북 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정부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교섭력이 커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이 같은 정부의 북한 감싸기에 인권을 가장 우선해야 할 인권위까지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는 인권위의 존립 목적을 허무는 일이다.

우리 인권위의 설립 근거는 유엔의 국가인권기구 설립 권고에 따른 것이다. 국제 인권법의 국내적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그런데도 우리 인권위가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어떤 의견도 내지 못하는 것은 그 설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자의적 적용으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또 최근엔 공무원 정년 차등, 초등생 일기장 검사, 경찰 채용시험에서의 키.몸무게 제한, 비정규직 법안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관할사항 여부에 대해 이견이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까지 의견을 제시하는 인권위가 억압받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결국 인권위가 정권 차원의 기관이란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도 쓴소리를 하고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고 했다. 인권은 사상과 이념, 체제를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최소한의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