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조종사들 '아름다운 보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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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외국인 조종사 아저씨가 2년 전에도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오늘 저에게 장난감도 사주시고 함께 놀아줘 너무 고마워요. "

7일 오후 인천 송림동 월마트 매장. 심장병을 앓아온 어린 소녀 이혜진(10)양이 인도계 영국인인 디벤드라 돌라시아(52) 대한항공 소속 기장의 손을 잡고 어린이 의류와 장남감 매장을 돌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언어장애로 대화가 부자연스러운 李양이었지만 이날 돌라시아기장이 건네주는 곰인형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돌라시아와 李양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웨이트 에어라인에서 근무하다 1997년 대한항공으로 옮긴 돌라시아는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가정들을 보고 도움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98년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95명의 외국인 기장들을 모아 매월 급여에서 일정액을 떼내 불우이웃을 돕는 '외국인조종사 자선기금'을 만들었다. 도와줄 대상을 물색하던 중 서울 르네상스호텔로부터 李양을 추천받았다. 기장들은 비후성 심근증으로 심장근육이 굳어지는 병을 앓아온 李양의 딱한 소식을 듣고 돕기로 결심했다.

돌라시아가 李양과의 인연을 이어가던 2001년 5월 李양의 '마지막 소원'이 비행기 여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李양은 건강이 나빠져 사실상 회복 불가능 판정을 받았다. 외국인 기장들은 기금에서 돈을 빼 李양의 제주도 여행을 주선했다.

"2년 전 혜진이를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떠나 보내면서 '제발 힘을 얻어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 혜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계속 돕고 싶어요." 돌라시아 기장은 "한국기업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외국인 기장들이 한국 어린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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