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노이로제와 이기심|이시형 <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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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픈 동료가 결근하면 누군가 그 몫을 대신해 줘야한다. 물론 큰 병을 앓아 입원을 했거나 수술이라도 했다면야 어쩔수없다. 상부 상조란 이런 경우 쓰는 말이다.
한데 결근한 이유가 「몸이 좀 불편해서」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듣는 쪽이 불쾌하다. 속는 기분도 들고 은근히 화가 난다. 그 정도 누가 안아파? 요즘 같이 바쁜때에 자기가 빠지면 죽어나는건 동료직원이다. 그런 사정 뻔히 알면서 몸좀 불편하다고 결근하다니.
그렇잖아도 골치아픈 일이 터져있는 판에, 더구나 월말에. 생각할수록 얄밉다. 하지만 그러니까 빠져야하는게「신경성」의 생리다.
한마디로 괘씸한 얌체다. 자기가 안하면 누군가 그일을 대신해야 한다. 그게 미안해서 40도 고열도 숨기고 출근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가벼운 두통에도 쉬어야겠다는 얌체도 있다. 제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친구다. 남이야 죽든말든 내 몸하나 위하고 내 몸하나 편해야겠다는 것이다.
가벼운 감기에도 병원이지 회사는 아니다. 애들 학비도 변변히 못 대는 주제에 제 몸을 위해서라면 돈 아까운줄 모른다. 비싼 병원 진료는 물론이고 보약에 비싼 운동에 좋다는건 다 한다. 빚을 내서라도 해야한다.
이런 사람치고 벌이가 좋을 수도 없다. 죄없는 가족이 불쌍할뿐이다. 그렇다고 뭐라 한마디 할수도 없다. 그의 눈치만 보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시원찮은 주제에 큰 소리는 잘친다. 『내 몸하나 어떻게 되어보라구. 이 집꼴이 뭐가 되겠어?』미안한 생각이 들어선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 되받아친다.
남이 들어도 역겹다. 하지만 이들에겐 세상에 귀한게 제 몸하나 뿐이다. 이집의 기둥이라고 큰 소리친다. 이건 협박이다. 가족으로서야 아니꼬와도 할말이 없다. 가장의 책임상 건강해야겠다는데야 어쩔것인가.
누가 건강이 싫겠어. 그래서 건강이 지켜진다면 백보 양보해서 이해할수도 있다. 문제는 이게 계속되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결국 건강을 망치고 만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몸을 위하다 보면 몸의 저항력이 떨어진다. 작은병은 더러 앓기라도해야 면역도 생기고 내성이 생기는 법이다. 혹사도 금물이지만 지나치게 위하는 것도 쇠약을 자초한다. 그뿐인가. 결근 자주하는 사람치고 하는일 잘되는 법이 없다. 직장에서도 인정 못 받는다. 승진에 누락되면 끝내 우울증에 빠진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이런 저런일로 속이 상하면 몸은 더 아프고 그 땐 진짜 환자로 된다.
이게 병을 핑계로 한 신경성의 말로다. 아프다는건 엄밀히 말해 반사회적행위다. 아픈만큼 일을 못하고 앓는만큼 남이 대신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들어눕는 것도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그 피해가 누구에게 어떻게 미칠 것인가부터 생각해봐야한다. 차마 아프단 소리가 입에 나오지않을 것이다. 그래야 낫는다. 진정 낫고 싶거든 그반사회적 이기심부터 버려야한다. 이게 노이로제치료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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