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에 "엄마노릇"톡톡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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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애야, 잘 잤니? 쉬하자.』
『또 무서운 꿈을 꿨어? 괜찮아. 여기 선생님도 있고 친구들도 다 있잖니.』
남달리 오랜 시간을 일터에서 지내야 하는데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민하는 어머니들을 위한「개구장이 놀이방」(서울 종로구창신2동).
낮잠에서 깬 2∼5세의 어린이들을 일일이 안아주며 오줌싼 어린이의 속옷을 갈아입히기도 하는 교사들은 정작 어린이의 어머니들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어린이와 생활하는「엄마 선생님」이다.
어린이들은 첫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졸린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섰다가 오후9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나는 어머니와 함께 하품하며 집으로 돌아올때까지 온종일 선생님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는다.
이 놀이방에서 지내는 35명 어린이의 어머니들은 대개 청계천과 동대문 일대의 소규모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재봉사.
월수입이 15만∼25만원정도인 어머니들이 어린자녀를 동네 아주머니에게 맡기려면 매달 15만원정도 들어 힘겨운 맞벌이를 해봤자 가정형편에 별 도움이 안되고 따라서 자녀들을 시장골목이나 유흥가 주변의 위험하고 비교육적인 환경속에 방치해야하는 형편이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직장생활과 자녀양육문제로 고민하는 기혼여성들의 고된 처지를 돕기위해 대학교수및 대학원생들이 매달 5천∼2만원씩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이 놀이방이 운영되기 시작한것은 지난85년부터. 한달에 4만원만내면 국내에서는 최장시간인 하루12∼14시간 동안어린이들을 돌봐주기 때문에 늘 20명안팎의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도 맡아달라』며 순서를 기다린다.
이 놀이방 가까이에는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국내 의류의 약80%를 만들어내는 소규모 공장들이 7백개 가까이 밀집해있어 어린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곳이 꼭 필요한 근로기혼여성들이 많다.
공간과 일손 부족으로 어린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해 안타까와하는「개구장이 놀이방」김순옥원장은『이 부근에만도 2개의 놀이방과 2살미만의 영아를 돌볼수 있는 탁아소가 더 있어야한다』면서『기혼여성들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상가마다 입주 업체들이 공동으로 탁아소를 만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이 놀이방과 비슷한 성격의 탁아소는 아직도 전국에 50개미만뿐이라며『이런 시설을 크게 늘리는 것은 여성운동뿐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고려돼야 할것』이라고 덧붙인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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