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이창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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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3국 하이라이트>
○. 이창호 9단(한국) ●. 뤄시허 9단(중국)

강경과 온건의 사이는 저승과 이승만큼이나 멀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점점 더 멀어져 이윽고 영영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사막을 흐르는 강처럼 또는 수도승처럼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이창호 9단이 이 판의 결정적인 대목에서 '강경'을 선택하는 장면은 참으로 놀랍다.

장면1(168~176)=A로 두면 백이 이긴다. 관전자들은 이창호 9단이 A에 두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168으로 꼬부렸고 이 수와 동시에 검토실에선 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두려운 길이다. 그 코스가 독충이 가득한 늪지대임을 프로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창호가 이 험한 길을 선택하다니! 170 끊는 것은 접전의 맥점. 이 9단은 여차하면 아예 근본적으로 수를 내려고 한다. 171 잡을 때 172 먹여치고 다시 174로 먹여친다. 바둑판에 놔보지 않고서는 쉽게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수순이다. 이때만 해도 이 길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진창길임을 이창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참고도=이창호 9단은 흑1~4까지의 수순을 원하고 있다. 귀는 잡히지만 A를 얻을 수 있고 선수를 잡게 된다. 귀의 백은 흑이 다 놓고 따내야 한다.

장면2(177~191)=뤄시허(羅洗河)9단은 177까지는 예상대로였지만 179에서 방향을 틀었다. 179, 181로 빵빵 때려내 이득을 취한 다음 귀의 패를 버티기 시작했다. 백도 △의 곳을 따내 귀의 삶을 패에 걸게 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벌어지는 흑의 끝없는 항전에 백은 지치고 만다. (182.188=△, 185.191=▲)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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