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이어지는 구속결정 문제 없나…법원은 "인력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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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심사를 하루 앞둔 지난해 2월 2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마련된 취재진의 촬영대. 최정동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심사를 하루 앞둔 지난해 2월 2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마련된 취재진의 촬영대. 최정동 기자

구속의 갈림길에 선 피의자와 촉각을 세우고 대기 중인 검찰, 영장 발부 여부에 쏠린 국민의 시선. 그리고 대다수가 잠든 새벽에야 내려지는 법원의 결정.

중앙지법, 새벽에야 심사 끝나는 사건 많아 #사건 관계자, 결과 기다리는 국민 모두 고역 #법원 "중앙지법에 사건 몰리고 기록 방대" #일각 선 "영장심사 인력 탄력 투입해야"

최근 서울중앙지법 영장심사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실제 최근 박근혜(66) 전 대통령, 전병헌(60)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여론의 이목이 쏠린 피의자가 연루된 사건들은 대부분 자정이 지나서야 영장심사가 끝났다.

이를 두고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 여부를 법원에서 너무 늦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은 물론 밤새 결과를 기다리는 국민들도 모두 고역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최근 인권침해 우려로 ‘밤샘 조사’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새벽이 돼서야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수억 원대 금품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5일 새벽 영장이 기각된 직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억 원대 금품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5일 새벽 영장이 기각된 직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중앙지법의 구속 여부 결정은 왜 매번 ‘밤샘 심사’로 이어지는 것일까.

법원은 영장심사를 위해 피의자를 인치한 뒤 24시간 이내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형사소송법상 심사가 늦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 관계자는 “영장심사가 오전부터 시작돼 다음 날 오전 전까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밤샘 심사’를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장심사 단계에서 피의자는 엄밀히 말해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가 확정되지 않은 ‘대기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피의자를 귀가시킨 뒤 다음날 다시 조사하는 등 임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영장심사에 시한을 두지 않으면 피의자가 유치장 등에서 무한정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당일엔 늦어지더라도 24시간 이내에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게 법원 측의 입장이다.

구속된 피의자들이 들어서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새벽 전경. [뉴시스]

구속된 피의자들이 들어서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새벽 전경. [뉴시스]

하지만 중앙지법 외에 다른 법원에서는 일과 시간(오후 6시) 내에 심사가 끝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서울고법 판사는 “4~5년 전만 해도 중앙지법에서 오후 11시 이전엔 심사 결과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는 데 최근 심사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진녕 변호사는 “일부에선 여론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부담을 느낀 법원이 일부러 늦게 심사 결과를 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법원 측은 일부 심사가 늦어지는 대형 사건들 때문에 모든 심사가 늦어지는 것으로 오해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중앙지법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가담 사건 등 증거가 명백한 사건들은 비교적 신속하게 심사가 이뤄진다”며 “이례적으로 기록이 방대한 데다 ‘제3자 뇌물’ 등 혐의가 복잡한 사건들에 한해서만 심사가 상대적으로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과 이명박(77) 전 대통령 영장심사 단계에서 검찰 수사 기록은 각각 10만, 8만 페이지에 달했다.

중앙지법에 사건이 몰리는 것도 심사가 늦어지는 이유로 지적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는 총 3만5126건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중 중앙지법에 가장 많은 3175건이 몰렸다. 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3명이 매년 각자 1000건이 넘는 영장심사를 하는 셈이다. 한 중앙지법 판사는 “구속영장 외에도 압수수색, 통신조회영장 등도 심사해야 해 영장전담 판사의 업무가 과중한 편이다”고 말했다.

법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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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영장전담 판사 수를 늘려 과중한 업무에 대응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김한규 변호사는 “판사 한명당 업무 분담을 줄여 신속한 결정이 내려지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중앙지법의 다른 부서도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가용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영장전담 판사 수만 늘리기는 어렵다”며 “형사소송법상 하나의 사건에 영장전담 판사가 한명 이상 투입될 수도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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