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최단신 손시헌 "실력은 키順 아니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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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70㎝.

키가 작아 고민이었다. 프로 입단서류에는 슬쩍 2㎝를 올렸다. 더 올릴까 싶었으나 그러다간 진짜로 키를 재겠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겁이 났다. 어릴 때부터 작았다. 초등학교 졸업 때 1m39㎝였다. 그렇다고 콤플렉스는 없었다. 잘 뛰고, 센스있고, 순발력도 좋았다.

그러나-.

대학 진학과 프로행에는 매번 키 때문에 장벽에 부닥쳤다. 고교(선린 인터넷고)졸업 후 뽑겠다는 대학팀이 없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겨우 창단팀(부산 동의대)에 빈 자리를 얻었다. 올 초 대학졸업 때 또 한번 좌절을 겪었다. 프로에서도 부르는 곳이 없었다. 이번에도 구세주가 손짓했다.

두산 새내기 유격수 손시헌(23)과 두산 2군 코치 김광수(44).

지난 7월 이후 두산의 유격수를 맡고 있는 손시헌은 김광수 코치와 여러모로 닮았다. 1m70㎝의 단신인 손시헌과 1m68㎝의 김코치 모두 야구선수로는 작은 키다.

마음고생을 했던 사연도 같다. 더구나 김코치는 손시헌의 사부다. 김코치는 1990년대 말 잠시 선린인터넷고에서 손시헌을 지도했다.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던 손시헌이 부산 동의대에 입학한 것도 김코치의 역할이 컸다.

대학 졸업 후 실업자 신세가 될 시헌을 연습생 신분이나마 두산으로 끌어준 사람도 김코치였다. 말 그대로 연습생 신분에 계약금 한푼 없는 손시헌에게 펑고(수비훈련을 위한 배팅)를 쳐주며 프로의 쓴맛을 가르쳐 준 사람도 김광수였다.

그리고-.

7월의 시작과 함께 '신인' 손시헌은 뒤늦게 1군 무대를 밟았다. 지명되지 않은 연습생 출신은 7월 이후에나 1군에 오를 수 있다는 규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1군 코칭스태프도 작은 키의 그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때마침 주전 유격수 김민호가 부상으로 빠졌고, 그의 재주를 아는 김코치가 적극적으로 로비를 했다.

1군으로 올라온 후 손시헌은 두산 김인식 감독 말처럼 '물만난 고기'처럼 펄떡펄떡 살아 움직였다. 강한 어깨에서 나오는 송구는 총알같았다. 물샐 틈 없는 수비는 대만족이었다. 두달여간의 적응기간을 거쳐 지난 4일 잠실 LG전에서는 4타수 3안타를 몰아치며 타격도 살아나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최단신 손시헌의 성공시대 제1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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