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쇠사슬' 해법 하이닉스에서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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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평택의 통북시장이에요. 600여 개의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재래시장이지요. 이 사진은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악수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인근 마을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려면 평균 1시간은 기다려야 해요.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3시간인데, 부천에서 가평 가려면 반나절이 걸려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경기도의 숙제입니다."

하이닉스 공장 안에 왜 콩밭이 있을까?
경기도 이천 하이닉스 공장에는 어쩔 수 없이 조성된 ‘거대한 콩밭’이 있다. 당초 직원들을 위한 후생시설(운동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20년 넘게 절대농지로 묶여 있어 고민이라고 하는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3층.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실은 마치 재래시장 같다.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책상 위엔 서류 뭉치가 수북하다. 통북시장에서 찍었다는 사진 얘기에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천 소사가 지역구인 김 의원은 ‘평택 사람’이 다 된 것처럼 "교통 사정이 안 좋다.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도백(道伯)이 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그를 만난 것은 3월 22일 오전이다.

많은 기업인이 ‘경기도는 규제의 땅’이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대한 불만인데요, 핵심은 연면적 규제입니다. 공장을 세우든, 축사를 짓든 그 면적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도, 공장도, 하다 못해 축사도 영세해졌어요. 난립이 따로 없지요. 한마디로 ‘수도권 쇠사슬’이지요. 결과적으로 관리·감시도 안 되고, 규제도 안 통해요. 오히려 오염의 주범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또 여론이 핏대를 높이고 규제만 더 강화되는 악순환이 생기지요."

소규모 마구잡이 개발만 허용하는 현재의 수도권정비계획법이 경기도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그래서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규모를 키우자는 제안이다.

"이천에 있는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에 가보면 ‘해법’이 보여요. 이천은 하이닉스에서 나오는 폐수로 물을 대 전국 최초로 노지 모내기를 했습니다. 폐수의 온도가 높아 모내기가 가능했지요. 공장에서 나온 폐수니까 오염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100% 믿을 수 있는 물입니다. 하이닉스는 규모가 큰 사업장이다 보니 환경 시설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어요."

하한 규제가 더 효과적이다, 그렇게 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뜻인가요?

"지금처럼 환경에 투자할 여력이 안 되는 소규모 공장이나 축사만 허용한다면 수도권은 산업 경쟁력도 잃고, 환경 문제도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을 옥죄는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계획적 성장 관리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 관점에서 바라봐야지요."

김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폐지 및 대체입법’을 발의했다. 한창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하이닉스가 김 의원에겐 ‘경기도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이닉스에서 ‘악법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공장 안에 생뚱맞게 콩밭이 있더군요. 그곳이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이라는 것입니다. 당초 하이닉스는 이곳에 후생시설(운동장)을 조성하려고 했는데 절대 농지로 묶여 있어 부랴부랴 콩을 심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이런 난센스가 어디 있습니까."

왜 이런 엉뚱한 규제가 생길까요?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여론 때문에 (규제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무지, 무책임이 합쳐진 결과지요. 제대로 친환경 개발을 하면 도시도, 환경도 살릴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물 정책입니다. 왜 서울 사람들은 환경 오염 때문에 더 더러운 물을 마셔야 하고, 양평·가평 사는 사람들은 물 때문에 개발에서 소외됐다는 푸념을 해야 합니까?"

기업인들을 가끔 만나시지요. 무슨 얘기를 듣습니까.

"친구들이 주로 경제부처나 금융회사 등에 근무하고 있어요. 기업을 하는 친구들은 ‘국가 브랜드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합디다. 이건희 삼성 회장 같은 세계적인 기업인이 몇 개월 동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나온 말이에요. 이런 분들이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거꾸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이번에 삼성이 내놓은 8000억원도 그래요. 정권에 무슨 미운털이 박혀 벌금을 내는 것 같은 인상이 짙어요."

외자 유치 문제는 어때요? ‘파주의 LG필립스LCD, 화성 3M 등 92개 기업으로부터 13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는 것이 손학규 현 지사의 트레이드 마크지요.

“3년 동안 아주 잘하셨어요. 전국에서 새로 만든 일자리의 57%가 경기도에 있습니다. 투자 유치의 64%를 경기도가 했어요. 손 지사 스스로 ‘저평가 우량주’라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요.”

어쨌든 투자 유치는 계속 해야지요?

“물론이지요. 외국 첨단기업 유치를 위해 더 화끈하게 인센티브를 줄 작정입니다. 1억 달러 외자 유치에 성공하면 1억원(투자 유치 금액의 최대 0.1%)의 포상금을 줄 것입니다. 현재 경기도는 상한액을 1000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조례만 바꾸면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가능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외자 유치도 좋은 외자와 나쁜 외자로 구분해야 할 때 아닌가요.

“임창렬 지사 때 얘깁니다. 한 외국계 자본이 부천에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을 짓겠다며 6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어요. 외환위기 당시니까 얼마나 반가워요. 그런데 조금 고민해 보니 교통 정체, 음식물 냄새 문제 등으로 도시가 망가지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산시킨 적이 있습니다. 외자라고 무조건 받지는 않습니다.”

김 의원이 그리는 경기도의 미래 산업지도는 어떤 모습입니까.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 등 첨단 산업과 전통 산업이 동반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컨대 도에서 독감백신 생산업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생산·연구단지를 유치하려고 추진 중인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양계장이라는 전통 산업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백신을 만들려면 월 평균 1200만 개의 계란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런 조건에 맞는 곳은 경기도뿐이에요. 우수한 인재, 쾌적한 자연 환경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요.”

경제자유구역 구상도 들어있네요. 인천·부산·광양에 이어 평택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인데요. 사실 기존 경제자유구역의 개발 추진도 지지부진합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성공 가능성 있는 경제자유구역 한두 곳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요.

“평택을 충남 당진·천안 등과 연계해 대(對) 중국 핵심 기지로 육성하는 플랜이 이미 수립되고 있습니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면 이 계획에 탄력이 붙을 수 있어요. 단계적으로 순차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시 발전’이 맞다고 봐요. 중국도 그렇게 해서 성공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그랬잖습니까. 포항 개발한 다음에 울산 한 것이 아니라 광양, 창원 벨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터뜨렸어요. 그게 더 효과적입니다. ‘나폴레옹의 칼’처럼 쾌도난마로 해야 합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열네 살 때 ‘공인(公人)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해 중학교 때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했고, 고등학교 때는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했다”. 대학에서도 제적을 두 번이나 당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화두는 ‘애국’이다.

재테크는 어떻게 하세요.

“(껄껄 웃다가 손사래를 치며) 결혼하고 나서 서울살이 15년, 부천살이 13년째입니다. 이사를 한 적이 없어요. 자취하던 시절엔 6개월에 한 번씩 짐을 쌌지요. 재산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지난 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된 김 의원의 재산은 2억5700만원). 재테크 같은 ‘자기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실수였다. “공인으로 나이 마흔에 죽을 생각을 했다.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사람에게 재테크를 묻다니. 질문을 바꿨다. 지금은 ‘CEO형 행정가’가 유행이라는 말을 꺼냈다.

“훌륭한 CEO의 첫째 조건은 수익성 아닌가요? 물론 CEO형 리더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다릅니다. 봉사정신이 필요해요. 국가관과 애국심이 필요합니다. 돈이 생기는 비즈니스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그늘진 곳을 먼저 찾아야 해요. 선출직 지도자는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늘 깨어 있어야 국민이 편안합니다. 저는 하루 16시간, 주 7일, 1년 360일 근무하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머슴’으로 살았다는 것을 ‘김문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인정해줍니다.”

당에서 ‘예선’을 통과하면 김 의원의 본선 상대는 경북중학교 동창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 전 장관의 출마 선언 일성은 “CEO형 리더가 필요하다” 아닌가.

“2:3:3:2예요. 당내 경선은 대의원(20%), 당원(30%), 일반 국민(30%), 여론조사(20%) 결과로 이뤄집니다. 예선은 낙관하고 있어요. 후보군 중에서 정치 경력이 가장 길고(13년), 당내 충성도도 1위 아닙니까.”

상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대제가 ‘서울에 있는 경기고에 갔다’는 얘기를 들은 정도지요. 서울 공릉동에 있던 서울대 교양과정부를 같이 다녔습니다. 조용했던 친구로 기억하지요.”

진 전 장관과 다시 조우한 것은 참여정부 들어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대제 당시 삼성전자 사장을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발탁했을 때다. “자녀 국적이나 재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이지요. 제 방에 여러 번 찾아왔어요. ‘이런 인재는 외국에서라도 스카우트해야 한다’면서 당내 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도와 달라는 ‘민원’을 넣기도 했지요. 당시엔 ‘정치인이 될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김 의원은 진 전 장관에 대해 “정치는 안 할 사람이니까”라면서 3년 전의 인연을 더듬었다. 물론 “아직 (진 전 장관은) 도민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본인도 고심했을 것입니다. 저도 조심스럽습니다. 자칫하다간 친구 간의 우정을 깨고 자리나 탐내는 사람으로 비칠까봐서지요. 어쨌든 사람에 대한 상처는 입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코노미스트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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