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페미니스트들 "펜스룰은 미숙함 당당히 드러내는 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펜스룰은 미숙함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나는 여자를 사람으로 다루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무지의 표현이다" (한양대 허형욱씨)
"성차별을 해소하고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펜스룰은 상식적인 방법이 아니다" (서울대 이선준씨)

[중앙포토]

[중앙포토]

사회 곳곳에 '미투'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학가에서는 '미투'와 함께 페미니즘이 주목받고 있다. 대학가의 페미니즘은 보통 '여대생'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역시 또다른 편견일 수 있다. 페미니즘에 동참하고 있는 남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펜스룰과 성평등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15일 학내 페미니즘 학회나 소모임에서 활동하는 남자 대학생 4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여성과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펜스룰'에 대해 "미숙함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대 이율공(24)씨는 "본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지 않는다면 전혀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남성중심사회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허형욱(25)씨는 ""펜스룰이 굳어질 경우 여성들이 더 배제되고 도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톨릭대 민현창(24)씨는 "펜스룰은 남성들의 권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고위직 여성들이 많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고 반문했다.

(좌)국민대 영상디자인학과 이율공(24)씨와 (우)가톨릭대 국사학과 민현창(24)씨는 학내 페미니즘 모임에서 활동중이다. 본인 제공.

(좌)국민대 영상디자인학과 이율공(24)씨와 (우)가톨릭대 국사학과 민현창(24)씨는 학내 페미니즘 모임에서 활동중이다. 본인 제공.

"일상속 성차별에 의문 제기하며 관심" 

이들은 어떤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관련 활동을 하게 된 걸까. 이율공씨는 전역후 복학 첫 학기인 3월 페미니즘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는 "인권에 대해 소신 발언한 안희정이 위선적 행동으로 도마위에 올랐다. 곪아있던 성폭력 문제들이 터져나오며 나도 방관하는 건 아닌가 싶어 페미니즘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했다.

허형욱씨는 "학창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 사소한 미묘함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느꼈다. 내게 사소한 문제가 여성에게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난 강남역 살인사건 때 여자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성 문제에 공감이 됐다"고 밝혔다. 이선준(20)씨는 "일상속에서 성고정관념 발언을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사내자식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여동생은 '넌 여자니까' 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런 말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관심이 생겼다"고 전했다.

 한양대 경영학과 허형욱(25)씨는 학내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 '월담'에서 활동중이다. 본인 제공.

한양대 경영학과 허형욱(25)씨는 학내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 '월담'에서 활동중이다. 본인 제공.

허씨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약자라는 부분, 이 불평등이 정당하지 않고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공감하기 때문에 나는 페미니스트다"고 말했다. 민씨는 "페미니스트는 선언이 아니라 과정이다. 진보 인사들이 미투 운동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며 인식과 실천은 별개라고 느꼈다. 안희정(전 충남지사)도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선언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스스로 행동 돌아봐" 

한국 사회의 남성중심문화와 여성이 겪는 부당함에 대해서는 입을 모았다. 허씨는 "당장 화장실에 가는 것도 여성들은 몰카에 대한 공포에 떤다. 같은 곳에 취업하려면 여자가 남자보다 스펙이 좋아야한다"고 말했다.

민씨는 "올림픽 기간 여자 선수들은 외모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성적 대상화와 차별이 만연하다"면서 "나도 자기 의견 당당히 말하는 여성을 보면 비판하고 싶다. 같은 얘기를 남성이 했을 때와 여성이 했을 때가 다르다. 나부터 조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율공씨는 "미투운동에 대해 바른미래당 충남도당이 '민주당은 순박한 처녀의 순결을 유린하고'란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처녀가 아니고 순결하지 않으면 유린당해도 되는건가. 21세기 공당이 할 말인가 싶더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선준(20)씨는 관악 여성주의 학회에서 활동중이다. 본인 제공.

서울대 경제학과 이선준(20)씨는 관악 여성주의 학회에서 활동중이다. 본인 제공.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인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민씨는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가 될 특성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 중요한 건 여성들이 잠재적 피해자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허씨는 "나도 무심코 차별적 발언들을 해왔고, 가해행위에 대해 방관적 태도를 보인 점에서는 잠재적 가해자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선준씨는 "남성이 가해자 위치에 있게 만든 사회구조 원인"이라고 했고, 이율공씨는 "전부 동의하진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맥락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라는 성평등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율공씨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한 구절인 '자연의 불공평함을 치유하는 것은 모든 문명의 임무다'란 말을 인용하며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특성으로 인해 차별이 발생하고 고착화되면 안된다. 차이를 채우고 출발선이 동등한 사회다"고 말했다. 허형욱씨와 이선준씨는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된 사회라고 말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남녀가 평등하고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면 다른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현창씨는 "정책적인 부분들 보단 남성 스스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저희 모임에 들어와도 된다. 인식의 변화를 맞을 각자의 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계기를 겪고 각성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