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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세금은 정권의 무기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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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참여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세금으로 겁주기'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면서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인상하는 무시무시한 세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많은 세무공무원을 풀어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감시하기까지 했다. 올해 들어서는 8.31 대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자 강남지역 재건축아파트 취득자와 판교 신도시 아파트 당첨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고 자금 출처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세청이 나서서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 표본세무조사를 통해 소득의 57%를 탈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고 이러한 탈루가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해석까지 덧붙이고 있다. 그동안 많은 학자가 부족한 자료를 다 끌어 모아 연구한 결과 탈세 규모가 40~60% 정도라고 하면 펄쩍 뛰던 국세청이었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설문조사를 해서 발표했다는 데 놀라울 따름이다. 드디어 국세청도 '양극화 부각운동'에 동참하고자 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사실 학계에서는 선진국처럼 국세청이 나서서 매년 설문조사를 한 뒤 이를 이용해 납세협력 비용과 탈세 정도를 추정해 발표할 것을 꾸준히 건의해 왔다. 그리고 국세청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세금 자료를 선진국에서와 같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개인납세자 정보의 보호라는 이유로 이러한 요구를 수용한 적이 없었다.

세금과 세정을 무기로 삼던 정권은 늘 국민이 그리고 역사가 심판하곤 했다. 따라서 세금을 중립적으로, 그리고 세정을 독립적으로 만들 때 비로소 그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세금을 중립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세금을 부과해 발생하는 왜곡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세금이 부과되면 근로자는 일을 덜하거나 소비를 줄이려 할 것이고, 기업은 투자를 줄이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상위 20%가 90%의 세금을 내고 있으니 나머지 80%는 세금을 올려도 안심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세금이란 늘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점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상위 20%만 세금을 더 내게 하면 이들이 노동.소비, 그리고 투자를 줄여서 경제도 나빠지고 세수도 줄어들게 돼 피해는 하위 80%로 되돌아온다.

세정이 독립적이어야 함은 세정이라는 칼을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법과 원칙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원칙과 과학을 기반으로 세정을 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세청장의 임기를 철저히 보장함으로써 세정을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세정 독립을 위해서는 보편화돼 있는 탈세 풍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세정으로 겁주기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부가가치세의 간이과세 제도와 소득세의 추계과세 제도를 폐지해 세금계산서 등 자료를 근거로 거래하고 장부를 기초로 신고하는 것을 기본이 되게 해야 한다. 세금 중립과 세정 독립의 기반을 닦는 것이야말로 양극화 해소, 그리고 증세보다 우선순위가 훨씬 높은 과제인 것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