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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온 MB, 포토라인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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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 23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서서 심경을 밝히고 있는 모습. 강정현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 23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서서 심경을 밝히고 있는 모습. 강정현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14일 오전 9시 23분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서 이같이 심경을 밝혔다. 지난 1월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언급했던 '정치 보복' 주장은 되풀이하지 않았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죄송하다"는 말을 두 번,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 했다. 국민과 자신을 지지해준 측근들을 향해서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매우 엄중한 때에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고 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로서 물론 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며 말을 맺었다.

역사에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생략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그간 이번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란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이란 말을 넣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바레인으로 출국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바레인으로 출국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 전 대통령이 이번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한 건 지난해 11월 12일 인천공항에서가 처음이었다. 바레인 현지 강연회를 위해 출국을 앞둔 그는 기자들과 만나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 보복이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가 들어와서 오히려 갈등과 분열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서 저는 많이 걱정을 하고 있다”고도 토로했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현 정부의 ‘적폐청산’ 움직임을 “퇴행적 시도”라고 비난했지만 '정치보복'이라고 언급하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측은 반응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MB의 최측근을 겨냥했다. ‘MB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국정원 특활비 전용 의혹에 연루돼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들은 법원의 영장 발부로 한날(지난 1월 17일)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 이게 제 오늘의 입장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이튿날인 18일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정치 보복을 위해 청와대가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에 대해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 부정, 정치금도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논평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14일 검찰 조사는 서울중앙지검 청사 1001호에서 진행된다. 박 전 대통령이 밤샘 조사를 받은 곳이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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