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켜두셨군요” 열화상 카메라로 자동차 공회전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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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에서 한 승용차를 단속하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 기기 화면에 엔진을 켠 승용차가 붉게 나타났다. [김상선 기자]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에서 한 승용차를 단속하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 기기 화면에 엔진을 켠 승용차가 붉게 나타났다. [김상선 기자]

“쉿, 들린다.”

서울, 미세먼지 심한 3월 집중 단속 #중점 제한 장소 2772곳 바로 적발 #경기·부산 등선 초시계 측정 방식 #서울, 동영상 촬영에 시비도 줄어

지난 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후문 앞 도로. 세 명의 남성은 엔진이 켜진 승용차 한 대의 뒤편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한 명이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기기를 꺼내 승용차 배기구 쪽을 동영상 촬영했다. 기기의 화면속에서 회색의 승용차는 붉은색으로 나타났다. 배기구에서 배기가스가 나와 온도가 올라가서다. 반면 차가운 아스팔트는 파란색으로 표시됐다. 기기에 부착된 열화상 카메라가 온도를 감지한 것이다. 화면에 표시된 촬영 시간이 6분을 넘어서자 이 남성은 기기를 껐다. “이제 갑시다.” 승용차 주인에게 다가간 이들은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다. 이들은 특수 장비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배기가스’를 잡아냈다.

“6분 14초간 중점 공회전 제한 장소에서 공회전했습니다. 면허증을 주세요.” 이해관(59) 서울시 기후대기과 주무관이 운전자에게 적발 사실을 알렸다. 이날 오전의 기온은 영상 5도. 기온이 5도 이상에서 25도 미만일 경우 2분만 공회전해도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된다. 서울시는 전체가 자동차 공회전 제한 지역이다. 게다가 관광지·주차장과 같은 ‘중점 공회전 제한 장소’ 2772곳에선 1차 경고 없이 바로 적발할 수 있다.

운전자는 “시동을 켜둔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이 주무관이 “이 장비에 시간까지 기록된 증거가 있다”고 하자 운전자는 결국 단속 15분 만에 면허증을 내놓고, 확인서에 서명했다. 이날 오후 단속반은 중구의 한 호텔 앞에서 4분간 공회전한 관광버스 한 대도 적발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가 심한 3월 한 달 동안 공회전을 집중 단속한다. 평소보다 3개 반을 늘린 6개 반(총 18명)을 투입한다. 최균범(57) 서울시 기후대기과 사무관은 “공회전은 미세먼지의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포함된 배기가스를 배출한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의 모니터링(2015∼2016년) 결과 교통 부문이 배출하는 미세먼지는 서울 지역 자체 미세먼지 발생량의 37%를 차지한다. 난방(39%)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올해 배기가스 단속이 이전의 단속과 다른 점은 ‘특수 장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공회전을 단지 ‘초시계’로 단속해 적발된 운전자가 “증거 있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번에 도입된 특수 장비의 본체는 ‘스마트폰’이다. 열을 감지하는 온도센서와 열화상 카메라를 스마트폰에 부착했다. 한 대 가격은 500만원 수준이다. 지자체 가운데 이런 첨단 장비를 도입한 곳은 서울시가 처음이다.

경기도와 부산시·대구시 등 대부분의 지역에선 공회전 단속이 시간만 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서울시의 사례를 참고해 단속 기법을 다양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단속원과 운전자 사이에 시비를 줄일 수 있는 단속 기법은 좋은 시도라고 볼 수 있지만, 배기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대형 버스 위주로 단속해야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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