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무용

확산되는 아시아 춤 네트워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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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장광열 춤비평가·숙명여대 겸임교수

장광열 춤비평가·숙명여대 겸임교수

무대가 밝아지면 중앙에 푸른 잎이 무성하고 군데군데 열매가 달린 커다란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두 명의 남성들이 상의를 걷어 올리거나 발목까지 바지를 내릴 때 몸 구석구석에 숨겨졌던 달과 별, 하트 모양의 표식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이들이 움직이는 몸과 조합되어 어떤 형상들이 만들어질 때나 바짓가랑이 속으로 발 대신 손을 넣어 춤출 때면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 관객들은 기발한 발상에 탄복한다. 무음악에 상체 위주로 움직이는 전반부와 서정적인 음악과 하체 중심으로 변환되는 후반부의 대비된 움직임 구성 등 안무가의 계산된 구도도 작품의 완성도에 일조했다.

지난 2월 12일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김호연· 임정하 안무 ‘최초의 풍요사회’는 작품을 풀어나가는 아이디어, 움직임의 조합과 상상력의 발현이 돋보인 수작으로 축제에 소개된 20개 작품 중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엉덩이를 반쯤 노출한 10명의 무용수. 어찌나 세차게 때렸던지 금세 붉어진 선명한 반점들, 차가운 얼음조각이 녹아 바닥을 흥건히 적실 때까지 손으로 잡고 버티는 댄서들의 집중력은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지난 2월 일본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김호연·임정하 안무 ‘최초의 풍요사회’. 움직임의 조합과 상상력이 돋보인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사진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

지난 2월 일본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김호연·임정하 안무 ‘최초의 풍요사회’. 움직임의 조합과 상상력이 돋보인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사진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

2월 4일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에서 선보인 시모지마 레이사의 안무는 거칠고 강렬했다. ‘자아비판’이란 이름 아래 많은 동지를 린치 살해한 일본의 아사미 산장 사건을 춤으로 표현했다. 인체의 한계를 실험하듯 오브제를 이용한 저돌적인 몸의 확장, 강렬한 음악, 거침없이 내뱉는 짧은 독백으로 역시 주목을 끌었다.

해마다 2월 일본에서 열리는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과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은 아시아 안무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댄스 플랫폼이다. 앞의 두 작품은 화제작답게 세계 여러 나라의 축제감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올해로 각각 23회, 11회째를 맞은 두 축제는 공연 프로그램 못지않게 극장과 페스티벌 간의 교류 확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최근 아시아의 춤 네트워킹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동아시아 안무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출범한 핫포트(HOTPOT)는 올 10월에는 한국에서, 2년 후에는 일본에서 열린다. 이 같은 아시아 댄스 플랫폼의 확장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안무가들의 작품이 세계 춤 시장의 중심부로 진입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일본의 두 축제에 초청된 6명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 역시 평균점을 웃돌아 이를 입증했다.

장광열 춤비평가·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