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유기견 사랑도 이혼 사유가 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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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42)

남편은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연히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이 유기견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믿음이 생겼습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하기가 쉽지 않고, 특히 저는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이 힘들어 엄마로부터 구박을 받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데이트하면서 남편은 자기를 버린 주인을 잊지 못하는 강아지를 너무나 불쌍하게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정든 강아지가 입양되어 가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남편과 결혼을 하면 어쩌면 우리도 유기견을 입양하여 키워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주인 잃은 강아지가 외부인의 방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유기견 보호소에서 주인 잃은 강아지가 외부인의 방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저는 남편처럼 동물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싫어하지는 않아서 2마리까지는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직접 남편에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한 달쯤 되었을까요. 우울해 하는 듯한 남편을 보면서 제가 먼저 유기견 입양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남편은 너무 기뻐했고 제게 아주 고마워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서 강아지를 데려오더군요. 순둥이가 오면서 저희는 더욱 알콩달콩해졌습니다. 순둥이는 거의 남편이 키웠고, 저는 그저 눈으로 보거나 쓰다듬어 주기만 했는데도 제게 자꾸만 파고드는 순둥이가 저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남편이 자꾸만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2마리까지는 혼자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5마리까지는 더는 데려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면서 감수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멈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는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남편은 강아지가 더 큰 존재인 듯합니다.

저도 문을 열었을 때 반갑게 다가오는 순둥이가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10여 마리가 있는 집에는 들어가기 싫었어요. 강아지들을 감당할 수 없어 집을 아파트에서 빌라로 옮겼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정의 평안은 더는 아니었습니다.

남편 말대로 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퇴근해서 집에 갈 때 가자마자 쓰러지지 못하고 개털을 치우고 강아지들 시중을 들어야 하면서 짜증이 났습니다. 물론 강아지들 산책이나 목욕같이 큰일은 남편이 거의 알아서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사랑스럽던 강아지들이 오히려 제게 우울감을 주더군요.

이런 제 마음을 솔직하게 남편에게 다 말했지만, 남편은 제가 변하길 바랐습니다. 저 불쌍한 강아지들을 어떻게 하냐는 남편 말도 다 틀리지는 않는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저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남편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이제 지나친 강아지 사랑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남편이 계속 이혼을 거부하면 법원에 갈 수밖에 없을 텐데 과연 이혼할 수 있을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사례자 말씀처럼 남편이 나쁜 사람이 아니죠. 하지만 같이 사는 것은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할 거예요. 그런 경우에 혼인생활을 유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이혼은 꼭 '나쁜 사람과 살 수 없다'는 것이 아닌데 한국의 이혼 법제는 혼인생활 파탄에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주장하도록 해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처럼 비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혼인생활을 더는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나쁘지 않아도, 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좋은 사람이라도 나와 맞지 않아서 사는 것이 힘든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협의이혼의 대표적 사유가 성격 차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사례자 남편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 결국 사례자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예전에 법원에서 만난 부부도 이와 유사한 사정으로 이혼을 청구했는데 원만하게 조정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건이 있던 부부지만 우리 재판부가 놀랄 정도로 조정이 잘 성립되었습니다. 그때 아마도 동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조용하고 기품있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 힘일 거라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힘없는 동물에게 애정을 갖고 대하는 품성은 귀한 것입니다. 사례자도 그래서 결국 남편과 결혼을 결정하셨겠죠. 그런 남편이니 사례자가 진정 원하는 것에 결국은 귀 기울일 거라 생각합니다. 부부 상담부터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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