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원장의 요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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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법부가 처한 오늘의 당면과제는 민주화시대에 맞는 사법부의 재건이다. 「정부의 시녀」 니, 「도구」니 하는 오명을 씻고 새시대를 이끌어나갈 사법부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의 시대정신이 두말할것 없이 민주화라면 사법부 또한 다시 태어나야 하는게 시대적 요청이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말이 그렇지 다시 태어나는게 그렇게 쉬울 수만은 없다. 산고의 아픔도 겪어야하고 지난날을 후회하고, 반성하고, 정리도 해야한다. 비굴과 오욕으로 가득찼던 지난날을 자성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짐해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가 왜 이렇게 추락하고 존경은 커녕 불신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법정의 황폐화」니, 「눈치재판」이니 하는 말이 왜 나오게 되었고, 법관 기피신청과 법정소란이 끊이지 않았던 원인규명도 있어야 한다.
그같은 원인규명과 뼈저린 자성이 없고서는 결코 새로 태어날수 없다. 원인을 알고 반성을 했으면 그 다음에 할일은 책임지는 일이다. 그것이 도의적 책임이었든, 정치적 책임이었든 간에 책임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기반성이 될 수없고 새출발도 기약할수 없다.
권위와 신뢰의 대상이어야할 사법부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고 사법의 독립을 지키지 못해 정부의 시녀로 전락케하고 국민의 기본권과 법정의를 실현시키지 못한 책임은 면할수도, 묻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요즘 논란이 한창인 대법원장의 유임은 어느 모로 보나 온당치 않은것 같다. 오늘의 사법부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대법원장이 전격으로 져야할 일이 아님은 잘알고 있다. 대법원판사를 비롯해 수많은 법관이 있는데 혼자서 그책임을 도맡는건 무리인줄로 안다.
그러나 직·간접의 책임이 어느 누구에게 더 많으냐 보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여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포괄적이고 도의적 책임을 지는게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본다.
새로 임명될 대법원장은 사법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게 된다. 그러한 대법원장은 국민과 법조인으로부터 신망과 존경의 대상이어야 하고 과거 민주학에 기여했거나 민주정신이 투철한 인사여야 한다.
다시말해 대법원장으로서 도덕적인 힘과 사법권독립에 강한 신념을 가진 법조인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법부가 새면모를 일신하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고 흠있는 법관들을 과감히 정리할 수도 있다.
경위야 어떠하든 지난날의 과오에 무관할수 없고 그에 대한 궁극의 책임을 상징적이나마 져야할 대법원장이 새시대 사법부를 이끌고 법관들을 정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누가 보더라도 지식과 덕망과 인품을갖춘, 이 시대에 맞는 법조인으로 후임 대법원장을 선임하길 바란다.
그것이 헌법이 바뀌고 새 공화정이 들어서고 새국회와 대통령이 새로 선출된 역사의 진운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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