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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STX조선의 운명, 수주 잔량이 갈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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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성동조선해양의 경남 통영조선소. 정부는 다음 달 중 이 회사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연합뉴스]

성동조선해양의 경남 통영조선소. 정부는 다음 달 중 이 회사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연합뉴스]

8년간 4조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목숨을 이어간 성동조선해양이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갈 전망이다. 또 다른 부실 중형 조선사 STX조선해양은 인력·비용 감축을 통해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늘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안 확정 #청산가치가 더 높게 나온 성동조선 #신규자금 지원 없이 법정관리 가닥 #수출입은행 3조 넘는 손실 불가피 #STX는 선종 특화 통해 정상화 지원

정부는 8일 오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성동조선은 야드(작업장)가 비어 있기 때문에 지금이 법정관리 신청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STX조선은 아직 수주물량이 꽤 남아 있어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수주잔량의 차이(성동조선 5척, STX조선 16척)가 두 조선사의 운명을 갈랐다는 의미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EY한영회계법인의 1차 실사에서 청산가치(7000억원)가 존속가치(2000억원)의 3배로 나왔다. 청산가치가 더 크다는 건 채권단 입장에서는 기업을 청산하는 게 회수율 면에서 더 낫다는 뜻이다.

정부는 결정을 미뤘다. 지난해 11월 ‘금융 논리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다’는 새로운 구조조정 원칙을 밝히면서 외부 컨설팅을 다시 발주했다. 구조조정 주무부처도 금융위원회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로 바꿨다.

이를 두고 경제계에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나온 삼정KPMG 컨설팅 결과에서도 성동조선은 청산가치가 더 높게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결국 정부와 채권단은 성동조선에 더는 신규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을 전제로 하는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이 아닌, 법정관리행을 택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로선 한국GM과 금호타이어 등 다른 구조조정 현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밑 빠진 독 물 붓기’라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성동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원 주도로 실사를 진행한 뒤 채무 재조정 등 회생계획안을 마련한다. 만약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청산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성동조선 채권단(수출입은행·우리은행·농협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은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채권단이 성동조선에 물린 돈(출자전환+채권)은 2016년 말 잔액 기준 3조8000억원이다. 이 중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3조2000억원을 차지한다. 법원이 청산 결정을 내리면 이 돈은 거의 다 떼인다. 회생 결정이 나더라도 대규모 채무 탕감을 해 줘야 한다.

이로써 2010년 4월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시작된 성동조선 구조조정은 사실상 실패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와 채권단은 막연히 조선업황이 회복되기만을 기대하며 시간을 끌다가 많은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8년간 성동조선은 여러 차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그때마다 수출입은행은 총대를 메고 신규 자금을 넣거나 출자전환을 해 줬다. 시중은행이 자금 지원에 난색을 표하며 일찌감치 빠져나간 자리를 수출입은행이 메웠다.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닥치자 정부가 수은에 현물출자를 해서 자본을 보충해 줬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가 결정을 미루고 시간만 끌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초창기엔 조선업 경기가 이렇게 장기 침체로 갈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성동조선을 연명시켰지만 생산성·경쟁력을 높이지 못하고 부실만 키워 결국 국민 부담만 가중됐다”며 “이런 구조를 더는 끌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동조선과 달리 STX조선은 인력 감축과 선종 특화 등을 통해 정상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STX조선은 현재 수주잔량이 16척으로, 내년 3~4분기까지는 일감이 남아 있다. 보유자산 매각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신규 수주에 성공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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