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11연승 비결 "채찍 대신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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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입을 다물었다고? 박재홍이 웃는다고?"

프로야구 기아 선수단의 요즘 분위기를 보면 두번 놀란다. 다혈질의 소유자 김성한 감독은 경기 중 도통 말이 없다. '홀로서기'로 유명한 박재홍은 최근 팀훈련 중 동료들과 코치들에게 먼저 다가가 농담도 건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김감독이 말을 줄인 것은 '채찍'을 거뒀다는 뜻이고, 박재홍은 동료들과 하나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팀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힘은 더 커졌다. 이러한 변화들이 3일까지 11연승을 달리며 공동 2위까지 수직상승한 기아의 힘이 됐다.

김감독은 평소 선수들의 실수에 관대한 편이 아니다. 즉시 야단치는 일이 많다. 올시즌 팀 성적이 하향세를 그을 때는 특히 짜증을 많이 냈다.

그러나 '신세대'인 젊은 선수들은 공개장소에서 심한 질책을 당하는 것에 반감을 품었다. 팀 안팎에서는 올해로 계약기간이 끝나는 김감독의 진로문제 등 온갖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팀워크는 바닥이었다.

이즈음 김감독은 주위에서 "말을 아끼라"는 조언을 들었다. 팀 순위가 5위까지 떨어지면서 목표도 우승 대신 4위권 진입으로 낮췄다.

마음을 비우자 부담도 줄고, 질책도 사라졌다. 동시에 찬스 때면 무조건 타자에게 한방을 주문했던 정통파 스타일도 고쳤다.

번트작전을 과감히 구사했다. 필요하면 '짜내기'도 했다. 선수들도 한점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장거리포로 해결사가 돼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집중력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희생번트(45개)가 8개팀 중 가장 적었던 기아는 올해 후반기 39경기에서 32번이나 번트를 댔다. 후반기만 놓고 보면 현대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기아를 밀어주는 또다른 한 축은 새얼굴이 등장한 불펜진이다. 고질적인 약점인 왼손 불펜 투수진에 오철민이 후반기 들어 분전하고 있고 이경원.유동훈 등 2군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선수들도 지친 마운드의 소금이 되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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