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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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가 작다고 대통령까지 작은 것은 아닌가 보다. 전임 대통령의 경우 다른 나라 대통령은 저리 가라 할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공식으로 발표된 통계 숫자만 봐도 보통 사람으론 감당도 못할 격무의 자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연평균 연세 84회, 국내 출장 1백 36회, 출장일수 1백 42일, 접견자수 1만 7천명. 청와대 화보를 보면 대통령이 창 밖을 내다보며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도 있었다. 일부러 모양을 낸 것인지는 몰라도 사진 설명은 대통령자리가 이처럼 고민하며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위치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자. 대통령이 어느 날 일에 지친 안색으로 국민 앞에 나타나 『민주주의 같은 민주주의 제대로 해볼 셈이니 국민 여러분 저를 진심으로 좀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국민들도 그만 감동해 대통령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보약을 싸들고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을 구출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어느 독지가는 산수 좋은 자리에 천 평쯤 땅을 기증하고 국민들은 앞다투어 성금을 내고 그래서 대통령에게 별장 지어주기 운동이 온 나라에 확산되었다. 드디어 백 평 짜리 아담한 별장이 하나 세워졌다. 얼마나 기가 막힌 드라마인가.
모처럼 시간을 낸 대통령은 결재거리를 가방에 챙겨 넣고 주말이면 그 별장으로 달려가고 일요일 저녁 다시 건강한 얼굴로 서울에 돌아온다. 그 모습이 신문 카메라 기자들의 셔터에 잡히고, 길거리의 국민들도 그런 대통령의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자, 이쯤 되면 별장시비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국민들은 그 별장 연못에서 2백만원짜리 황금붕어를 기른다고 해도 곧이 듣지 않을 것이다. 또 대통령 경호한다고 10리 밖에서 길을 막고 백성들을 얼씬도 못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도리어 산나물이나 무쳐 드시라고 문 밖엔 시골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이런 일은 다 접어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국민의 세금으로 어마어마한 별장을 짓고 쉬쉬하니 세상엔 거기서 금송아지가 산다더라하는 소문이 나도 할말이 없게 되었다. 딱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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