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짜고 친' 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문화관광부가 새 국립국악원장에 김철호 국립국악원 정악단 지휘자를 내정했다는 소식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역시 각본대로 갔다'는 느낌을 씻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예총 출신 인사를 국립국악원장에 내정한 것을 문제 삼자는 게 아니다. 이번 내정자도 충분히 그 자리에 어울리는 베테랑이기에 더 그러하다. 하지만 심사위원을 교체하면서까지 특정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히는 과정이 이 시대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음을 다시 짚고 싶다.

신임 국립국악원장 선임을 위해 구성된 심사위원 11명 중 네명이 갑자기 교체됐다는 제보를 접한 것은 심사 당일인 지난 8월 1일 저녁. 교체 이유를 묻자 문화관광부는 휴가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나중엔 '3배수 후보'였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심사 여부도 불확실한 '후보'에게 심사료 지급을 위한 통장번호는 왜 물어보았느냐고 묻자 "행정편의를 위해 후보 전원에게 모두 물어봤다"고 답했다. 그후 '3배수'중 상당수가 전화 연락도 받은 적이 없음이 밝혀지자 지난 3일 정례 브리핑에선 "그런 경우가 생긴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시인했다.

전국대학국악과교수포럼의 지적처럼 정부는 차라리 특정 인물을 밀기 위한 과정에서 심사위원을 교체하고 말바꾸기와 변명을 해야 했음을 시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주적 절차와 양심을 저버리면서 행한 일을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