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절망에 넘어지면서도 포기않는 삶에 애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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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작가 양귀자씨(33)는 멀고 아름다운 동네에 산다. 그는 결혼후 1년동안 서울에서 세번씩이나 집을 옮겨다니며 살다가 81년겨울 부천시원미동으로 이사했다. 원미동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끝에 붙어있는 외곽지대에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 공장지대와 주택가들이 어정쩡하게 뒤엉켜있는 원미동에는 전국각지에서 흘러든 사람들이 연탄배달도 하고 청과물도 운반하며, 날품팔이도 하고 회사에도 다니며 그렇게들 산다. 양귀자씨같은 소설가도 산다.…◇
양귀자씨는 86년3월부터 87년8월사이에 원미동을 무대로 한 연작소설11편을 썼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 묶은 연작소실집『원미동사람들』로 제5회「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에게는 첫 상이다.
『원미동은 아득바득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헝클어진 욕망과 분노·좌절,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희망등으로 엉켜있는 흔한 동네입니다. 저는 이 작은 동네를 통해 우리들 삶의 전체적 모습과 온갖 상처들이 나뒹구는 시대를 압축해서 담아보고 싶었읍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이라 얼떨떨하다는 작가는 『원미동사람들』을 쓰면서 비로소 사람이 살아가는 속내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삶이란 어느곳을 두드려도 비명이 터지는 악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작가는 전형적인물의 독무대인 장편형식이 아닌 인물 하나하나를 통해 복잡한 삶의 개별적 양상들을 질서화하는데 적합한 연작형식을 택했다.
산업사회 외곽지대로 밀려나 점차 깨지고 마모되고 왜소해지고 있는 우리들이 왜 좌절하는지, 그러나 왜 기어이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가야만 하는지를 작가는 이웃들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소시민들이 꿈꿀수있는 희망의 너비를 그린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부터, 한개인이 이유없이 당해야하는 폭력과 그 폭력에 대한 이웃들의 방관을 안타까와 하는 「원미동시인」등을 거쳐, 무수한 절망의 복병들에 넘어지면서도 한사코 조그만 욕망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눈물겹게 바라본 「한계령」에 이르기까지 11편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원미동 연작을 쓰면서 우리사회의 「계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읍니다. 사회는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이들의 성실함을 배반하면 안됩니다.』
55년 전주에서 태어난 양귀자씨는 원광대국문과를 졸업하던 78년 단편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미 닫힌 문」으로 『문학사상』을 통해 데뷔했으며 85년 첫 창작집 『귀머거리 새』를 출간하면서 문제작가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귀머거리 새』를 퍼내면서 작가는 『내 소설들은 왜 이렇게 희망이 배제된 삽화투성이로 이루어지는 것인가』탄식했었다고 회상했다. 양귀자씨는 뒷날 원미동연작을 쓰면서 그 이유가 자신의「닫힌 의식」때문이었음을 알게되었다.
희망이 숨쉴 통로를 「이웃들과의 관계맺기」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원미동연작은 아직 젊은 이 작가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문단의 신뢰를 극대치로 끌어올린 뛰어난 성취다. 원미동연작을 끝낸 후 작가는 단편 「정호엄마」와 중편 「천마총 가는길」을 썼는데, 앞으로 당분간은 중산층과 소외계층이 만나는 지점을 심리적으로 탐색하는작업에 몰두할 계획이다.
부군 심만수씨(36)사이에 딸 은우(7)를 두고있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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