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편지 한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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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교수님들의 깊고 넓은 뜻을 배울 수 있는 제자가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대부분의 학우들은 진심으로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행동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무감각과 무감정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그 시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순수성과 정의에 바탕을 두고 올바르고 건전한 태도변화에 노력도 합니다. 교수님들도 제자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쏟아 주시길 바랍니다.』
「스승의 날」을 앞둔 13일 강원대 교수들에게는 학내 「학원정립추진위」 학생들의 이름으로 된 「사은의 편지」가 일제히 배달되었다.
비록 짧은 글귀였지만 따뜻한 마음과 눈길이 행간에 배어난 편지에 교수들은 한결같이 감격스럽기까지 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이런 편지를 받아보기는 근래에 처음」이라고 말한 한 교수는 『80년 이후 정국상황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일그러졌던 사제관계가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했다.
3월 초 뜻을 같이하는 1백50여명의 온건(?)학생들이 모여 결성한 「학원정립추진위」는 이어 이날 오후 교문에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퇴근길 교수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뒤 정중히 허리를 굽혀 감사의 절을 올렸다. 또 게시판엔 시국과 관련, 매일같이 나붙던 격렬한 용어의 성명·격문 대신 스승의 은덕을 기리는 대우보를 내붙였다.
학내문제로 그 동안 농성·시위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강원대 교수들은 실로 오랫만에 「스승의 기쁨」을 맛보며 대견스런 제자들을 다시 바라보고들 있었다. <춘천=권혁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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