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미국 정치인들도 한인 유권자 의식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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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당시 한인 가게들은 모두 약탈당했는데 가해자인 흑인 폭도는 멀쩡히 돌아다니는 기막힌 현실을 직접 경험한 뒤 한인 유권자 운동이 비로소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10년째 한국인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키우기에 온 힘을 기울여 온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48.사진) 소장. 그는 이달 16일 뉴욕 한인타운 플러싱에서 유권자센터 개관 1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96년 설립된 한인유권자센터는 미국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인들의 정치의식을 일깨워 온 대표적 시민단체다.

그는 "예전엔 미국 정치에 대한 한인들의 참여 의식이 극도로 낮아 정치적 보호막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권자운동이 본격화하기 전인 95년엔 한국 교민들의 투표율이 5%에 불과했다. 미국 정치 외면의 부작용은 LA 폭동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재미동포들을 대변해 폭도 응징에 적극 나서는 미국 정치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LA 폭동 이후 교민 사회를 보호하는 정치단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유권자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인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젊은이들과 함께 뛰고 있다. 60여 명에 이르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수시로 가두 캠페인을 펼친다. "영주권자들에겐 투표권이 있는 시민권을 얻으라고 권하고, 시민권자들에겐 반드시 유권자 등록을 해 선거에 참여하라고 당부한다"는 설명이다. 자원봉사 대학생들이 유권자 등록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선거가 다가오면 유권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꼭 투표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 같은 노력은 놀랄 만한 성과를 냈다. 2002년에는 한인 투표율이 25%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과거엔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변화들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평소 한인 사회를 쳐다보지도 않던 미국 정치인들이 한인 유권자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는 지난해 11월 선거를 앞두고 교민신문에 한글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일부 한인 밀집지역의 후보들은 한국어 라디오 방송에 "안녕하세요. 아무개 후보입니다"라고 한국말로 유세도 했다. 뉴욕주 선거에서는 한국어 통역을 제공하고 한글 유권자 전용 등록용지도 도입했다.

그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 둘씩 성과를 거두게 돼 다행"이라며 "앞으로 유권자운동을 다른 한인 밀집지역으로 확대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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