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韓·美 합의각서 국회에 아직 보고 안해 효력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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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일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4차 회의에서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해 1990년 한.미 양국이 체결한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 개정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 측이 일부 독소 조항에 대한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들 각서에 대해 일부 정부 관계자조차 '불평등 협정'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들 각서는 용산기지 이전비용 전부를 한국 측이 부담하는 것은 물론 이전에 따르는 각종 비용과 손실 등도 모두 한국 측이 부담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는 ▶청구권▶영업손실 보상▶이사 비용 등이 있다.

청구권 조항은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이 적용되지 않는 모든 청구권에 대해 주한미군사가 손해보지 않도록 하거나 또는 면책할 것이며 계약관계 청구권과 주한미군사 고용인들이 그들의 고용과 관련해 제기한 청구권을 포함하며 꼭 이에 한정된 것이 아님'이라고 못박고 있다. 기지 이전에 따른 손해 당사자가 어떤 청구를 제기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영업손실 보상 조항은 '(한국) 국방부는 임시 또는 영구시설로의 최종 이전기간 중 발생한 사기(morale).복지(welfare).휴양활동(recreation) 수입 및 투자분 손실에 대해 금전보상을 제공한다'고 돼 있다. 이를테면 현재 용산기지에 운영 중인 이들 관련시설이 기지 이전으로 문을 닫는 기간에 발생하는 수익 감소분 등도 한국 측이 물어주도록 돼 있다.

이사비용 조항은 기지 이전 과정에서 주한미군사 요원 및 고용인 전원의 이사비용을 한국 정부가 제공토록 규정했다.

특히 영업손실 보상 및 이사비용 규정은 명확한 액수산정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미군 측이 일방적으로 비용을 요구해도 거부하기 어렵게 돼 있다.

각서에는 이 밖에 한국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미군 건축기준을 충족하는 시설을 미군에 제공한다는 내용과 환경복구 의무 면제 등 40여가지의 불평등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각서는 체결 과정에서도 하자가 많아 법적 효력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있다. 국민에게 막대한 부담을 지울 것이 분명한 합의 내용을 국방.외무부 장관의 서명만으로 체결한 뒤 아직도 국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각서의 법률적 효력은 유지한 채 이 내용을 보완하는 수준의 '포괄협정'을 체결한 뒤 국회에 보고하고 승인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일부에선 초법적 방법이라고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합의 내용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주한미군에 포괄적인 권리를 신설해준 만큼 부처 간 약정 수준인 각서 대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조약으로 체결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합의 내용의 불평등성과 체결 절차의 부적절함을 들어 각서를 무효화하고 미국과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철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사진설명 전문>
용산기지 이전 문제 등을 논의하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 4차 회의가 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2층 정책회의실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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