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해사 '구두방 아저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황두석씨가 구두를 수선하러 온 해사 생도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해사 제공]

"사관생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져야 하고 그런 멋의 마무리는 바로 신발이에요."

2대에 걸쳐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구두와 군화를 수선해온 사람이 있다. '해사 구두방 아저씨' 황두석(54)씨다. 황씨는 1994년 부친인 황영철(99년 작고)씨로부터 구두수선 일을 이어 받아 13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부친이 69~93년까지 해사에서 구두수선을 한 25년을 더하면 이들 부자는 38년을 해사 생도와 동고동락한 셈이다.

아버지 황씨가 생도들의 구두를 고쳐주기 시작했을 당시 4학년이 24기였다. 해군에서 가장 선임인 남해일 참모총장이 26기임을 감안하면 해사 출신 현역 장교 치고 황씨 부자에게 구두를 수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황씨가 고친 구두는 어림잡아 1만2000 켤레다. 그의 부친이 수선해준 구두까지 합치면 4만 켤레가 넘는다고 한다.

황씨 부자가 해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기업에서 기성구두가 나오면서 부터다. 황씨의 아버지는 60년대 진해에서 구두방을 경영하다 기성구두 파고에 밀려 장사가 여의치 않자 해사에서 구두 수선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됐기 때문이었다. 황씨는 진해역 철도 검수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아버지의 솜씨를 어께 너머로 틈틈이 익혔다. 그러던 중 "가업을 이어 달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를 잇게 됐다.

생도들의 구두를 수선하는 황씨의 정성은 각별하다. 그는 생도들의 등교 시간에 맞춰 출퇴근한다. 생도들의 용모와 복장 점검 기간 중에는 더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한다.

그는 일반 직원들의 신발보다 생도들의 신발에 더 많은 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훈련 중에 부상당할 수 있어서란다. 99년부터는 여생도들이 들어오면서 신발 종류가 남자 흰색.검은색 구두와 군화에서 2가지 더 늘어났다. 여생도 구두는 더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단다. 하지만 군용 신발은 모양이 일정해 여러 켤레를 수선해도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황씨는 생도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일반 직원보다 수선비를 30% 가량 덜 받는다. 구두굽 수선료도 달랑 1000원만 받는다. 황씨의 구두방은 저학년 생도에겐 정겨운 장소이기도 하다. "훈련이 많아 뒷굽을 자주 고치는 1학년 생도들에겐 동기들과 부담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은밀하고도 훈훈한 장소"라고 최모(해사 54기) 대위는 기억했다.

황씨는 "생도들의 구두 하나하나를 손질할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젊은이들을 가꾸고 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