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사실·가치·의지를 구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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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우선 ①경험과 자료에서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②그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해석이나 느낌, 주장과 가치판단 ③나아가서 앞으로의 실천의지와 새로운 문제제기 (질문, 토의, 논쟁거리)까지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교사는 말하기(강의)와 글쓰기(논문, 칼럼) 가운데 하나만 잘 하는 교사, 둘 다 잘하는 교사, 둘 다 못하는 교사 등으로 나뉜다. 누구의 탓일까?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받아보거나 발표를 시켜보면 첫째, ①만 있고 ②나 ③이 없는 경우가 많다. 주체의식이 없어서다. ①은 인식대상이고, ②와 ③은 인식주체의 것이다. 둘째, ①, ②가 있기는 하나 누구의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는 경우 역시 많다. 출처를 밝힌 인용이 아니라면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모두 표절을 연습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①, ②를 구분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③까지 있으면 좋다.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의 구성요소는 '사실, 가치, 의지'다. 이것들의 시제는 ①은 과거, ②는 ①을 바라보는 현재, ③은 미래에 관련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E. H. Carr). 여기서 과거는 역사적 사실, 현재는 역사가의 상황, 미래는 역사가의 비전을 말한다. 바로 이것들이 역사서술의 세 요소다. 결국 다른 말로 하면 역사는 ①사실관계와 ②가치판단과 ③실천의지의 소통인 셈이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주로 ①은 법정토론(forensic), ②는 사회토론(epideictic), ③은 정책토론 (deliberative)에서 다루어진다. 그 모범은 각기 재판, 언론과 국회 등에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건, 뉴라이트와 뉴레프트건, 양극화 해법이건 간에 실제 토론에서 ①을 ②나 ③으로 변질시키거나, 혹은 ③에 ①이나 ②를 뒤섞어버리거나 아니면 그것들의 관계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토론이 겉도는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리석은 논객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상대가 저지르는 변질과 혼동도 의식하지 못한다. 반면에 약삭빠른 논객은 상대를 속여 곤경에 빠트린다. 하지만 훌륭한 논객은 상대의 오류를 명쾌하게 간파한다.

토론을 겉돌지 않게 하는 요령은 논쟁에 앞서 토의에서 ①, ②와 ③을 일곱 가지 논제로 분석하는 데에 있다. 우선 사실논제는 ⓐ과거사실 [그랬다 vs 그렇지 않았다] ⓑ현재사실 [그렇다 vs 그렇지 않다] ⓒ미래사실 [그럴 것이다 vs 그렇지 않을 것이다] 등으로 나뉜다. 또 가치논제 역시 ⓓ과거가치 [좋았다 vs 좋지 않았다] ⓔ현재가치 [좋다 vs 좋지 않다] ⓕ미래가치 [좋을 것이다 vs 좋지 않을 것이다]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정책논제 ⓖ미래의지 [해야 한다 vs 해서는 안 된다]를 더하면, 논제는 결국 일곱 가지가 된다. 모든 토론은 이 범주 안에 있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①인용하라 (사실) ②자신의 입장을 밝혀라 (가치) ③질문, 토의, 논쟁거리를 제기하라 (의지), 그리고 그것들을 구분하라.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wontak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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