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모두에게 있으나 자극하면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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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위를 보라. 어느 것 하나 불안의 요인이 아닌 게 없다. 길을 걸어도 불안일색이다. 위로는 공사장 벽돌이 떨어지랴, 바닥엔 블록이 깨져있고, 달리는 차가 인도를 덮치랴. 살얼음 걷듯 조마조마하다. 출근 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언제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전전긍긍이다. 누가 알아, 내일 회사문을 닫게 될지. 아니면 사표라도 내랄지.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라더니 실감이 난다. 집이라고 안심은 안된다. 도둑 떼가 극성이고 연탄가스에 마음을 졸여야한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있다. 담장도 없는 마을에 갈짓자 걸음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던 시대는 이미 아니다. 다음 순간을 모르는 급박한 시대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불안이 없기를 바라? 그런 생각부터가 잘못이다. 피할 수 없다. 싫건 좋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안 나빠지면 다행이다. 불안의 시대에 살면서 불안 없이 살겠다는 생각부터가 망상이다. ·
좀 불안하다고 팔팔 뒤거나, 마치 세상종말이나 온 듯 당황하면 그땐 진짜 문제가 된다. 중추의 불안반응이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닥불에 기름을 붓는거나 같은 이치다. 교감신경의 과잉자극, 아드레날린의 과잉분비로 인해 심한 불안발작을 일으킨다.
불안을 건드려선 안된다. 상대도 말아야하며 싸울 생각도 물론 금물이다. 그럴수록 점점 성을 내기 때문이다. 자극할수록 점점 세력이 강해지는게 불안이다.
불안은 오면 오는가보다고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노라면 제풀에 세가 약해지게 마련이다. 이게 안되는게 불안증 환자다. 작은 불안에도 못 견뎌한다.
큰일이나 난 듯 겁부터 집어먹는다. 해서 어떻게든지 이를 없애려 든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다. 없어지기는 커녕 그럴 수록 더 악화된다. 이게 불안의 생리다.
이들은 불안을 적으로 생각한다. 절대로 있어선 안될걸로 간주한다. 없으면 좋겠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 하는게 이들의 불행이다.
이들은 마치 자신이 불안의 제물이나 된 것처럼 탄식하고 있다. 왜 자기만이 이 고통을 당해야 하나고 자신의 불운을 탓한다. 이 역시 큰 오해다. 불안은 언제, 누구에게나 온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고 맞아들이는 자세의 차이다. 오면 오는 대로 버려두면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또 왔구나 하고 수선을 떨면 이 불청객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제발로 온 손님은 제발로 가게 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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