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을 문 대통령이 우러러보듯"..노동신문 사진으로 본 특사 2박3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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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을 만나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을 만나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남한을 다녀간 김여정(29)의 2박3일을 북한 매체들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노동신문을 통해 비춰진 그녀의 남한 체류는 '꼿꼿한 태도로, 곳곳에서 깍듯한 환대를 받는' 모습이었다.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 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사진까지 실어 마치 떠받들여지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치밀한 선전·선동술을 북한은 드러냈다.

노동신문 등 동원해 '김여정 남조선서 환대' 부각 선전 #겨울올림픽 소식 전하면서도 '평창'이란 단어 빼버려 #곳곳에 "문재인 대통령이 요청·부탁" 표현 강조하기도

북한 고위대표단 일행의 평양 출발과 인천국제공항 도착 소식을 실은 노동신문 10일자 1면. [노동신문 캡처]

북한 고위대표단 일행의 평양 출발과 인천국제공항 도착 소식을 실은 노동신문 10일자 1면. [노동신문 캡처]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의 동정을 처음 다룬 건 지난 10일자 1면에서다. 노동신문은 '평창'이란 언급은 한마디도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위급 대표단이 제23차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 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 출발"이란 제목의 기사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북한 고위 간부와 군 명예 위병대가 환송하는 모습이다.

노동신문은 소파에 기대앉은 김영남(오른쪽 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몸을 당겨 공손한 자세를 취한 조명균(왼쪽 원) 통일부 장관을 대비시켰다. [노동신문 캡처]

노동신문은 소파에 기대앉은 김영남(오른쪽 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몸을 당겨 공손한 자세를 취한 조명균(왼쪽 원) 통일부 장관을 대비시켰다. [노동신문 캡처]

이 기사 옆에는 '남조선 도착' 소식이 별도 기사로 실렸다. 노동신문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공항에 나와 영접한 사실을 전하면서, 귀빈실에서의 환담과 고속열차를 이용한 평창 이동 등을 소개했다. 함께 실린 3장의 사진에는 귀빈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은 북측 관계자들과 달리 몸을 앞으로 당겨 김영남 등과 이야기 하는 조 장관의 모습을 대비되게 편집됐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만난 소식과 개막식 참가 모습을 다룬 노동신문 10일자 2면. 김여정이 문 대통령 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앵글의 사진 등을 실었다. [노동신문 캡처]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만난 소식과 개막식 참가 모습을 다룬 노동신문 10일자 2면. 김여정이 문 대통령 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앵글의 사진 등을 실었다. [노동신문 캡처]

같은 날 2면에는 평창 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서 문 대통령과 만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모습을 실었다. 또 개막식에서 문 대통령과 김여정이 조우한 장면도 담았다. 북한은 문 대통령 바로 뒷줄 관중석에 있던 김여정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실었는데, 마치 아래로 문 대통령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습이다.

11일자 노동신문은 김여정 특사 일행의 청와대 방문 소식을 7장의 사진과 함께 전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과 악수하며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면 위주로 실렸고, 많은 청와대·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뒤따르는 모습도 등장했다. 등을 대고 앉은 북측 일행과 달리 몸을 앞으로 당겨 북측에 뭔가 이야기하는 문 대통령의 옆모습이 담겼다. 같은 면에는 남북 여자 하키 단일팀 경기를 함께 관람한 소식도 덧붙였다.

김여정 특사 일행과 문재인 대통령의 면담 소식을 다룬 노동신문. 의자에 기대앉은 김영남과 몸을 당겨앉은 문대통령을 대비시켰고, 김여정의 꼿꼿한 자세를 부각한 장면을 편집했다.[노동신문 캡처]

김여정 특사 일행과 문재인 대통령의 면담 소식을 다룬 노동신문. 의자에 기대앉은 김영남과 몸을 당겨앉은 문대통령을 대비시켰고, 김여정의 꼿꼿한 자세를 부각한 장면을 편집했다.[노동신문 캡처]

김여정 일행의 특사 방문을 다룬 노동신문 보도의 특징은 첫째, '평창'이란 단어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조선'에서의 겨울올림픽 개최를 언급하긴 했지만, 국제 스포츠 교류행사인 올림픽이 남한에서 열린다는 점을 북한이 가급적 부각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 일행의 청와대 방문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여자 하키 단일팀 경기 관람을 다룬 노동신문 11일자 1면. [노동신문 캡처]

김여정 일행의 청와대 방문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여자 하키 단일팀 경기 관람을 다룬 노동신문 11일자 1면. [노동신문 캡처]

둘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남조선' 구도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김영남이나 김여정을 기사 문장의 주어로 삼아 자신들이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려는 의도다. 셋째는 김여정을 띄우는 대신 문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듯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달라 부탁했다"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우리 대표단이 기념촬영을 했다"는 식이다. 사진에 포착된 여러 장면 중 자신들 입맛에 맞는 걸 골라 교묘한 편집을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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