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 옛 일본군 독가스 '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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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태평양전쟁 당시 옛 일본군이 만든 독가스로 인한 일본인의 피해가 늘고 있어 일본 정부가 최근 대대적인 '독가스 청소작업'에 착수했다. 1972년 이후 30년 만이다.

패망 5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악령이 후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바라키(茨城)현 가미스(神栖)초(町)에서는 3년 전부터 같은 우물을 사용하던 8개 가정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20명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애완동물 네 마리가 갑자기 시들시들 앓다가 죽었다.

지난 3월 조사 결과 우물물에서 수돗물보다 4백50배나 많은 비소가 검출됐고, 주민 17명의 소변에서도 비소가 나왔다. 정부는 주변 땅에 묻혀있는 독가스통이 오랜 세월 속에 부식되면서 독가스가 새나와 우물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는 지난 4월 옛 일본군 화학실험부가 있던 곳의 건설현장에서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낡은 병이 깨져 세 명이 피해를 보았다. 일본 환경성이 최근 지방자치단체에 지시해 독가스에 의한 피해실태를 조사한 결과 4백88건에 이르렀다.

옛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당시 본토에 진군할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 내 18개 군대 시설에 총 3천8백여t의 독가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패전 뒤 바다속 8개 지역에 집중적으로 버렸고, 일부 부대는 땅속에 묻거나 호수에 무단 폐기했다. 하수구 등에 버려진 독가스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많았다.

정부가 72년 조사한 결과 패전 후 네 명이 사망하고, 1백29명이 부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조사.폐기작업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은 독가스들이 이제 다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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