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민심을 못 읽었다|허남진<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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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4·26총선 패배는 한마디로 국민의 진짜 마음속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 한데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역감정의 골이 깊다느니, 새마을비리가 결정타였다느니, 막판에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다느니 여러 가지로 원인 분석과 이유 설명이 뒤따르고 있지만 이토록 지역별로 똘똘 뭉쳐 민정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현장의 실제 모습을 전혀 눈치조차 못 채고 있었으니 그 자체가 패인이 아닐 수 없다.
투표함 뚜껑이 열릴 때까지만 해도 예상 의석 수를 1백16석으로 계산하고 있었으니 29석이나 빗나가 버린「87석」이란 결과에 충격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를 몰라도 그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호남의 어떤 이는『이건 이변도, 충격도 아닙니다』라고 태연히 말했다.
광주·전남-북 지방의 경우 37개 선거구중 자신들의 우세 지역을 l7석으로 꼽았었다. 특히 전북 14곳에선 10명이 당선될 것으로 믿어 별 의심이 없는 모습들이었다.
결과는 이들 지역에서 부산의 조남조 후보를 제외하곤 시소게임도 없는 일방적 완패로 나타났다.
진찰이 잘못됐으니 전술·전략 등 처방이 잘못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 같은 장미 빛 설계를 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1백16석의 산출은 자체 여론조사와 정부 각 기관의「정밀조사」를 토대로 이뤄졌다고 한다.
누구로부터 무슨 여론을 듣고 왔는지 그 오판의 자료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지난 대통령선거의 1등 공신으로「여론조사」가 꼽혔었다. 여론의 향방·흐름에 좇아 과학적인 선거운동을 펼친 것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됐었다.
당시 민정당 선거 팀들은『투표결과 0·7%의 오차밖에 없었다』고 자랑한바 있다.
이번에도 여론조사를 신주단자 모시듯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믿었던「조사」에 오히려 눈을 가리운 격이 돼 버렸다.
여론조사를 수시로 실시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속을 읽고 국정운영의 바탕으로 삼겠다는 정신은 높이 살만 하다.
다만 너무 과신하여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란 결국 민심을 읽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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