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가 금지한 인물··· 이순신 이어 삼손도 평창 땅 못 밟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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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순신' 헬멧에 이어 '삼손' 헬멧까지…몸 사리는 IOC 

이스라엘 스켈레톤 대표선수 AJ애덜먼이 쓰려고 했던 '삼손' 헬멧 [사진 애덜먼 트위터]

이스라엘 스켈레톤 대표선수 AJ애덜먼이 쓰려고 했던 '삼손' 헬멧 [사진 애덜먼 트위터]

"어떠한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선전도 금지된다"

올림픽 헌장 제50조 3항의 내용이다. 이 규정은 정치·종교·인종적 이유로 이해관계가 극명히 갈렸던 국가들마저도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며 올림픽을 세계적인 평화의 장으로 정착시켰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규정을 들어 캐나다 귀화 선수인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골리 맷 달튼'의 충무공 이순신 헬멧의 착용을 금지했다. 충무공 이순신이 왜 정치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이는 IOC가 얼마나 엄격하고 민감하게 제50조3항의 규정을 챙기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순신' 헬멧에 이어 이스라엘 '삼손' 헬멧도 금지한 IOC

이번 IOC의 제재 대상은 '삼손'이었다. 앞서 이스라엘 스켈레톤 국가대표 AJ 애덜먼은 '삼손'이 신전의 기둥을 부수는 그림이 그려진 헬멧을 사용하겠다는 뜻을 누차 밝혀왔다. 애덜먼은 "삼손은 우리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기둥을 깨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여행을 얘기한다"고 말했다.

애덜먼, 삼손 [사진 트위터]

애덜먼, 삼손 [사진 트위터]

여기서 삼손이란 인물이 누구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삼손은 구약성서 사사기 13~16장에 걸쳐 등장하는 히브리인(이스라엘 인)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시초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인물이다. 성서에 따르면 삼손은 블레셋(팔레스타인) 종족의 여인 드릴라(성경에서는 데릴라)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는 블레셋 종족이 히브리인들을 지배해왔는데, '삼손'은 그와 같은 히브리인들에게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고, 블레셋인에게 삼손은 그저 힘센 원수였다. 삼손은 사랑하던 여인 드릴라의 배신으로 힘의 원천이었던 긴 머리털이 잘려 힘을 잃게 되고, 이후 블레셋인들에게 눈이 뽑힌 뒤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머리털이 다시 자란 삼손은 힘을 되찾게 되고, 이를 몰랐던 블레셋인들이 다곤 신전에서 그를 조롱하자 그는 "함께 죽기를 바라노라"라고 외치며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린다. 이 일로 삼손도 죽게 되는데 성경은 이를 두고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의 숫자가 그가 살았을 때 죽인 숫자보다 많았다"고 적고 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분쟁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화가 바로 이 삼손 신화다.

민감한 이스라엘 상황 고려한 듯

AJ 애덜먼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AJ 애덜먼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애초 애덜먼의 '삼손' 헬멧은 IOC에 의해 착용이 허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NBC 방송도 애덜먼의 얘기를 인용하며 "IOC가 정치적, 종교적 성명이 아닌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7일 확인 결과 IOC는 최종적으로 '삼손' 헬멧의 착용을 금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애덜먼의 공식 트위터로 "IOC가 삼손 헬멧의 사용을 허락했느냐"고 묻자 애덜먼은 "내 헬멧은 상당히 아름답게 디자인됐지만 불행하게도 너무 성경적이라는 이유로 교체될 예정이다. 나는 (IOC의) 이 결정을 존중하며, 내가 올림픽에서 뛸 동안 이스라엘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또 다른 헬멧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이스라엘 스켈레톤 국가대표 AJ 애덜먼 [사진 트위터]

이스라엘 스켈레톤 국가대표 AJ 애덜먼 [사진 트위터]

IOC의 결정은 특히 최근 들어 더욱 민감해진 이스라엘의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하며,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다고 선언했다. 이후 이에 대한 중동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앞서 IOC는 이순신 헬멧의 착용 금지 결정에 대해 "영국의 영웅 로빈후드는 물론 미국 자유의 여신상도 제한됐다"고 협회에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IOC는 2012년 욱일기 유니폼을 입고 런던올림픽에 참여했던 일본 체조 대표팀을 징계하지 않는 등 규정의 적용에 있어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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