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뼈와 뼈는 서로 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벌초를 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님 산소에 들러 불효막심한 손으로 무성한 손발톱을 깎아드렸지요. 꿈속에 아카시아 흰 뿌리가 자주 보이더니 어머님 무덤 위에 아카시아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차마 무덤을 파헤치고 뿌리째 뽑아낼 수도, 맹독성 농약을 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낫으로 자르고 자를 수밖에.

저승에서도 힘드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참회의 가시들이 온몸에 박혀왔습니다. 후회는 언제나 가시처럼 박혀오는 불청객.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새 시집 한 권을 올리고 헌화.헌향.헌주를 했습니다. 내내 꾸중 맞은 아이처럼 주흘산만 바라보았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슬픈 무덤 하나씩은 있겠지요. 그 속에 아직 썩지 않은 흰 뼈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면 나의 뼈도 따라 울지요. 어차피 전생.현생.내생이 한 몸입니다. 뼈와 뼈가 서로 교통한다는 '동기감응론'이 뭐 별것이겠습니까. 덜 익은 땡감 하나 투둑 떨어지니 앞마당의 감나무 엄마는 오늘도 갈비뼈가 아픕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 오래 오래 사세요.

이원규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