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히틀러에 협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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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된「파리아스」(Victor Farias)의『하이데거와 나치즘』은 새삼스럽게 많은지식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널리 알려진 바와같이 현대가 낳은 가장 탁월한 철학자중 한사람이며 프랑스의「사르트르」(J-P Sartre)와 함께 실존주의의 두 기둥으로 존경과 추앙을 한몸에 받아온. 독일의 대표적지식인이다. 그가「사르트르」처럼「히틀러」에 대항하여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지는 못했을망정 어엿하게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직까지 지내면서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간간이 철학계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대부분「하이데거」에 대한 동정론으로 나왔다
지식인이란 원래 권력앞에 무기력한 존재이고 목숨을 바칠 용의와 각오가 서있지 않다면 우유부단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든지, 현대철학에 이바지한 그의 업적은 너무드 엄청난 것이어서 그가 그렇게 처신한데에는 반드시 무슨 깊은 뜻이 있였으리라. 더구나 그의 중심사상은「히틀러」와 같이 광분하는 독재자의 이법과 거리가 먼 형이상학적 실존의 문제가 아닌가. 대개 이러한 이유로 그의 처신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칠레의 망명객 출신이며「하이데거」의 제자이기도 했던「파리아스」의 비판은 이러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하이데거」는 가장 열렬한 나치당원이었으며 용의주도한 이론가로서 1945년「히틀러」가 몰락할 때까지 충성을 다 바쳤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프라이부르크 대학총장 취임연설인「독일대학의 자기주장(Die selbstbehau-ptung der deutschen universit)」을 면밀히 분석할뿐 아니라나치의 이념으로 대학을 개혁해야한다는 평소의 입장을 인용하며 그 당시 평화주의적이었거나 유대인들에게 동정적이었던 동료교수들을 비판하였고 종전후에도 유대인학살에 대해서 전혀 회한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아울러 환기시키고 있다. 한마디로「하이데거」는 반유대적이고 반민주적이었으며 극우적인 나치 사상가였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책은 8월에 독일어판이 출판될 예정이라고 하니까 이 논쟁은 곧 라인강을 건너「하이데거」가 몸담았던 프라이부르크 대학에까지 확산될 것이다.
나는 구름이 짙게 끼어 대낮부터 가로등을 켜놓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어두컴컴한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정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어느 모퉁이에서「히틀러」처럼 콧수염을 기른「하이데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젖어 있었다. 그는 이 교정을 거닐며 과연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일까. 아마 그는「파리아스」가 주장하는 만큼 나치즘의 신봉자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나치당원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누구 못지 않게 자기의 민족과 국가와 문화를 내세웠던 과격한 애국주의자였다.
어떤 철학자가 지나친 조국애의 발로로 한때 애국주의에 심취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하이데거」와 같은 형이상학자가「히틀러」의 광신적 나치즘을 옹호하고 또 그러한 입장을 오랫동안 고수하고 있었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어려운 일이다.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정 한가운데 우뚝 솟은 시계탑은 존경받는 지식인일수록 처신에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거듭 다짐케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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