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슈’ 강타한 검찰…법원은 이렇게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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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45, 사법연수원 33기) 검사의 폭로로 '성 문제'가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법조계에선 비슷한 사태를 겪었던 법원의 해결 방안에 새삼 이목이 쏠리고 있다. 2년 전 사법부는 여성 법관들을 중심으로 성 관련 피해 사례를 쏟아냈고, 1년 가까운 논의 끝에 법원은 지난해 대안으로 ‘양성평등 담당 법관 제도’를 도입했다.

“여자 판사는 예민” 등 문제 나와 # 지난해 ‘양성평등 법관 제도’ 도입 # 전국 30여개 법원에서 시행중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대법원 ‘젠더법연구회’는 당시 회장이던 민유숙 대법관을 중심으로 2016년 2월 전국 평판사 대상 법원 내 양성평등 저해 사례를 수집했다. 부장판사 이상 간부급은 수집 대상에서 제외했다.

전직 법무부 고위간부에게 성추행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린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 당시 법무부 간부였던 안모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JTBC 뉴스룸 방송화면 캡쳐=연합뉴스]

전직 법무부 고위간부에게 성추행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린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 당시 법무부 간부였던 안모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JTBC 뉴스룸 방송화면 캡쳐=연합뉴스]

연구회는 성차별과 성희롱, 두 부문으로 나누어 사례를 모았다. 그 결과 성차별적 언행으로는 ‘여자 판사들은 야근을 덜 한다’, ‘여자 배석판사들이 술 먹고 못 푸니까 대하기 어렵고 예민해서 재판부에 트러블이 많다’, ‘여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여기도 이제 사양사업이다’ 등 남성 우월적 언행들이 많았다. 서지현 검사가 ‘여성 검사는 남성 검사의 50%라고 생각하라’는 지적을 들었던 것과 유사한 사례들이다.

또 ‘(미혼 여성 판사에게) 더 나이들기 전에 결혼해라. 안 그러면 노산이라 위험하다’, ‘미스 김이 타 준 커피 맛 좀 볼까?’ 등 남성과 여성의 고정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는 언행들도 나타났다. ‘출산ㆍ육아 휴가로 다른 판사들에게 피해 줄 거면 판사로 지원하지 마라’ 등 일과 가정 양립을 저해케 하는 사례도 있었다.

민유숙 대법관 [연합뉴스]

민유숙 대법관 [연합뉴스]

법관들 사이에서도 ‘회식’이 성추행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 조직 문화로 꼽혔다. 회식을 하다 여성 판사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허리를 감싸 안거나 노래방에서 상급자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라고 강요, 몸을 아래 위로 훑어 보거나 특정 신체 부위를 자꾸 쳐다보는 행위 등 사례들이 나왔다. 당시 젠더법 연구회는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 지난해 4월부터 ‘양성평등 담당 법관제’를 전국 30여개 법원에서 시행중이다.

양성평등담당 법관들은 동료 법관들로부터 신망을 받아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고법판사, 단독ㆍ배석 판사 등 다양하게 구성됐으며, 남성 법관도 상당수 포함됐다. 젠더법 연구회 소속 한 여성 판사는 ”서지현 검사 사례처럼 성 비위를 보고받은 ‘윗선’들이 이를 그대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전담 법관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차별ㆍ성희롱 피해 진상규명 및 피해구제 관련 절차에도 나서게 된다. 피해자 동의를 바탕으로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에 보고하면 당사자 징계 절차를 밟기도 한다. 징계가 청구되면 법관징계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직, 감봉, 견책 등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는 법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익명 카페’도 개설되어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젠더법 연구회가 주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성 판사는 “법관들이 성 피해를 당할 경우 이곳으로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다. 비교적 활발하게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법원 전경[연합뉴스]

대법원 전경[연합뉴스]

하지만 사법부 내에서 성추문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지난해 6월 서울북부지법의 한 판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재판에 참여하는 여성 공판검사를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같은해 7월 서울 지하철 열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몰카 판사’도 있다. 그는 재판에 넘겨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한 여성판사는 ”사법부 구성원들 사이의 내부 문제를 엄중하게 단속해도 외부에서 일이 터지곤 한다“며 ”법원 뿐만 아니라 검찰에서도 근절하기 어려운 성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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