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광주· 전남지역 인사 초청 연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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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저는 꼭 1백48일만에 깊은 감회와 결의를 안고 광주에 다시 왔습니다.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접어들던 작년 11월29일 광주역 광장 유세, 최루탄과 화염병 연기가 자욱한 속에 돌멩이· 철근조각이 날고 각목과 폭력, 함성이 온통 뒤범벅되었던 그 마당에서 가슴에 새기고 새겼던 그 생생한 다짐을 안고 이제 대통령으로 광주에 왔습니다.
그 아수라장 같은 상황은 분명히 잘못된 역사, 어두움의 역사를 청산해야한다는 절규였습니다.
어둠을 걷어내고 태양처럼 광명정대한 역사를 이루라는 사명이 저에게 지워져 있다면 나 한몸 그 자리에서 희생되더라도 서슴없이 그 일을 하겠다고 그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그 생각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미움· 어둠의 역사는 한으로는 결코 풀 수 없다… 화해와 사랑이 아니고는 풀리지 않는다는 저의 믿음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광주문제의 해결 없이 국민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국민화합 없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없다는 것은 저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국민의 뜻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믿음으로<6·29 선언>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오랜 옥살이를 하고 묶여 있던 김대중씨가 사면· 복권되고 그밖의 모든 사람도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며,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렀습니다.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유감없이 압도적인 표를 그동안 고생해온 이 고장 출신의 김대중씨에게 준 것,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젠 그것까지 지난 일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명예와 영광을 함께 찾을 때입니다.
하루아침에 남편이나 아들 딸, 부모형제를 잃은 그 기막힘을, 그 비통함을 무어라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의 와중에서 부상했습니다.
8년전 이들 젊은이와 시민들은 분명히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거리에 나섰던 것도 아니었고 이기적 목적 때문에 희생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는 열정이 그들을 그 자리에 서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지 8년이란 긴 세월동안 울음조차 실컷 터뜨리지 못하고 죄진 사람처럼 억울함만 되뇌었던 사정 또한 기막힌 것이었습니다.
부상한 사람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갈등의 역사속에 정신적인 고통 역시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지난날을 하루아침에 잊어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선거를 치르면서 여러분을 만나고 현지의 비통한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광주의 아픔을 아물게 하는 것이 저에게 지워진 역사의 부름으로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조상, 시조의 묘가 바로 이 광주에 있습니다.
이 좁은 땅, 그것도 반목이 잘린 나라에서 어디서 나면 어떻고, 또 본적이 어디라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저는 취임도 하기전에 이 일이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선결과제라고 믿고 민주화합나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각계각층 국민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었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의사와 주장을 종합한 건의안이 나왔습니다.
광주시민의 입장에선 미흡함이 없을 수 없겠지만 광주의 아픔을 아물게 하기 위한 국민 최대공약수의합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건의를 모두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정부가 8년전의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고 해결책이 이처럼 늦어져 고통을 드린데 대해 죄송함을 밝혔습니다.
이 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때 참여했던 분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다 희생된 분들로 명예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상자에 대해 성의있는 보상을 실시하겠다는 것도, 위령탑과 기념관을 건립하고 묘지를 공원화하는데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것도 정부로서 인식과 태도의 일대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일부 비뚤어진 사람들의 주장처럼 돈에 의한 보상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희생된 분과 모든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에 참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치유책은 결말이 아니라 이제부터 화합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시발일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한으로써 어둠의 역사는 결코 물릴 수 없으며 아픔을 더욱 헤집는 정략은 비극의 고통을 더욱 크게 하고 그것을 연장시킬 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굳게 손잡고 오직 성실하게 있는 힘을 다 쏟는다면 민족화합의 새 싹은 분명히 광주에서부터 자라날 것입니다.
이 지역의 인재를 키우며 인물을 등용하고 <서해안의 시대>를 열게 하여 광주와 호남을 새 시대에 각광받는 땅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제 구원과 아픔을 씻고 용서하여 화합을 꽃피워나갈 때입니다.
국민을 가르는 모든 장벽을 허물어야 할 때입니다.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지역감정은 낡은 시대의 것으로 불태워버립시다.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도 뜨거운 화합의 불길로 녹여가야 합니다.
세계의 진운에 따라 이제 모든 우리 겨레는 결집된 역량으로 민족통합을 준비하고 민족통일의 큰길로 힘차게 전진해나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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