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챙기다 눈 감은 밀양 세종병원 의료진 3명

중앙일보

입력

지난 27일 밀양시 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 27일 밀양시 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숨진 37명 중 3명은 이 병원의 의료진이었다. 1층에서 당직 의사 1명이, 2층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환자 대피를 이끌고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당직 의사민현식씨는 이 병원 의사가 아닌 밀양시 인근 하남읍 수산리에 있는 행복한병원 소속 의사다. 그는 의료진 일손이 달리는 밀양 세종병원에서 틈틈이 당직 업무를 수행하며 주로 어르신 환자들을 돌본 것으로 전해졌다.

37명의 사망자 중 가장 늦게 연락이 닿은 민씨의 아내 장모씨는 지난 26일 오후 아들과 함께 안치실에서 남편의 모습을 확인한 후 연신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장성한 아들이 그런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2층 책임간호사였던 김점자씨는 30년 가까이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3년 전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 김씨의 어머니는 “딸은 환자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미혼이었던 김씨는 부모님을 평생 모셔 왔고,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

김씨는 불이 났던 26일 어머니에게 전화해 “병원에 무슨 일이 난 것 같다”고 다급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고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출근하자마자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구조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간호조무사 김라희씨의 남편은 “아내가 세종병원에서 5년 넘게 근무했는데 그런 사람이 비상구를 모를 리 없다”며 “바로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도 있어 만약 아내가 자신의 목숨만 생각했다면 얼마든지 혼자 빠져나왔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26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남편과 입맞춤을 하고 세종병원으로 출근했다. 출근한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각 김씨는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이 통화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이별하고야 말았다.

세종병원 의료진의 유가족들은 27일 현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살아나올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대피시키려 하다가 희생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이 희생들을 국가가 잊지 말고 잘 받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신속한 원인 파악과 사고 수습부터 재발 방지 대책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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