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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숨가쁜 부침… 재벌 "자리 바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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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자필쇠의 원칙은 재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
마치 욱일승천의 기세로 번창하던 기업이 어느 틈엔가 가망성이 없는 노쇠기업으로 전락하는가 하면 이름도 없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재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는 일을 너무나 자주 본다. 흥성하는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 기민하게 적응, 앞을 내다본 경영전략을 성공시킨 때문이며 쇠망하는 기업은 자기 주변과 경쟁상대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모른 채 우물 안 개구리식 경영을 한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부실을 거듭, 일약 「재벌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하고 정상에서 밀려나거나 도산한 기업들이 속출한다.
불과 20∼30년간의 재계 사를 되돌아보아도 그것을 금방 알 수 있다.
60년대 중반까지 국내 10대 기업으로 꼽히던 삼호방직(정재호)·화신(박흥직)·판본방직(서갑호) 등은 70년대 중반에는 재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삼호는 50년대와 60년대에 삼성과 더불어 재계의 쌍벽을 이루었던 기업. 그러나 사양산업인 섬유에 연연한데다 무리한 외자 도입에 의한 환차손으로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화신도 사양산업인 비스코스에 연연하다 기업의 뿌리가 흔들렸고 뒤늦게 소니와 합작으로 전자 산업에 뛰어들었다 격심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제시대 제1의 부자」라는 명예를 퇴색시켰다.
대한전선 (설경동)·개풍상사 (이정림)·삼양사 (김연수)·동양 시멘트 (이양구) 등은 상위권 경쟁에서 아예 탈락, 중위권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60년대의 10대 재벌 중 삼성·럭키금성·쌍룡 (구 금성) 등 3개 재벌만이 오늘날에도 10대재벌로 남아 세를 뻗쳐나가고 있을 뿐 대부분의 얼굴들이 바뀐 것이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는 재계의 판도 변화가 가장 격심했던 시기.
정부가 야심적인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워 국내 산업을 적극 육성할 목적으로 기업들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사실상 산업 초창기의 황무지 상태이기 때문에 유망 분야에 어느 기업이 먼저 뛰어드느냐가 재벌로 올라서는 지름길이 되었다.
섬유·식품·비료·시멘트 등 경공업에서부터 시작된 국내 산업의 발흥은 경부고속도로·아파트 등 국내 건설 경기가 이어지면서 이들 업종에 뛰어든 기업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성장을 거듭했다. 때 마침 정부의 수출 제일주의 정책과 해외 수출 경기, 그리고 중동 건설 경기가 불어닥치면서 선두 그룹들은 일약 재벌로 변신하게 된다.
이 호기를 타고 기존 선두 주자 외에 새로 10대 재벌권에 등장한 것이 현대·대우·효성·국제·선경·금호·롯데.
이 시절은 국내 자본이 빈약했던 터라 외국 자본, 즉 차관이 기업의 확장을 뒷받침하는 젖줄 노릇을 하게 된다.
「재벌=차관」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60년대 후반∼70년대 중반을 통해 외국차관을 적절히 활용하는가의 여부가 재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실제로 한진·현대·한일 합섬·한국 화약·럭키금성·삼성·대우·선경·쌍룡·효성 등이 거액의 외국 차관을 들여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를 한 것이 기업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된 것이다.
막대한 차관 자금과 수출에 따른 금융· 세제상의 혜택을 받아가며 재벌들은 저마다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전개하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재벌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재계 판도가 재구성되어 80년도로 넘어오게 된다.
70년대 재계 지도를 앞장서서 그려나갔던 해외 건설은 비록 한때지만 노다지 광맥 노릇을 톡톡히 해 건설 회사들은 굴러 들어오는 중동 달러를 갖고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해나갔다.
중동에서 큰돈을 만지게 된 기업들을 주축으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이나 하듯 닥치는 대로 기업을 인수하거나 회사를 신설했다.
74년 9개 기업을 거느렸던 현대는 불과 4년만에 22개 회사를 흡수하거나 신설, 국내 최대 재벌이었던 삼성을 제치고 선두로 뛰어올랐고, 대미 섬유 수출로 70년대 들어 혜성처럼 등장한 대우도 35개 계열 기업을 거느려 단숨에 10대 재벌 속에 뛰어들게 된다.
이 기간 중 삼성은 24개 기업에서 33개로, 럭키금성은 17개에서 43개로, 효성은 8개에서 23개로, 국제는 7개에서 22개로, 선경은 8개에서 23개로, 쌍룡은 17개에서 20개로, 금호는 9개에서 17개로, 롯데는 6개에서 18개로 각각 영토를 확장, 재벌 상위권에 굳건하게 포진한다.
그러나 정부의 중화학 육성 정책에 따라 발전 설비·중전기·제철·중기계·조선·석유 화학 등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국내 재벌 그룹들은 79년 2차 오일 쇼크와 함께 몰아닥친 세계 경제의 침체와 10·26사태라는 국내 정치 위기로 경제 환경이 급냉, 불어난 몸체를 가누지 못해 심각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감량 경영에 들어가야 했던 재벌들은 80년대 초반 정부의 중화학 조정에 따라 일부 수족을 갈리는 아픔을 감수해야했고 불황 업종을 많이 거느린 재벌들은 부실기업의 낙인이 찍혀 80년 중반 부실 기업 정리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85년2월 재계 랭킹 7위를 마크했던 매출 규모 1조8천억원의 국제 그룹의 공중 분해가 대표적인 케이스지만 정부의 부실 기업 정리로 87년4월까지 5차례에 걸쳐 해운·해외 건설 업체 등을 중심으로 무려 70개 업체가 주인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재계 지도는 다시 엄청나게 변한다.
부실 기업 정리 과정에서 한양 유통과 정아 그룹 (구 명성) 6개 사를 한꺼번에 인수한 한국 화약 그룹은 이로써 10대 재벌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국제 그룹 해체 때 무역·신발·양산 골프장·제주 하이야트 호텔 등 6개 사를 인수한 한일 그룹과 자신보다 덩치가 큰 연합 철강을 인수한 동국 제강 등이 매출액 1조원대를 넘어 20대 기업으로 발돋움 한 것이다.
이렇듯 쇠자의 뒤를 이어 성자가 나타나는 재계의 세계는 끊임없이 부침을 계속하고 있다. <특별 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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