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야구' 뒤엔 박찬호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참가를 며칠 앞둔 2월 중순, 박찬호(33.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소속팀의 스프링캠프인 애리조나에 있었다. 그는 WBC 참가를 상의하기 위해 케빈 타워스 단장을 만난 뒤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타워스 단장은 "잘 다녀오라"고 했지만 뭔가 찜찜했다. 소속팀의 선발 투수진 사정상 박찬호는 그렇게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다. 선발 투수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훈련 캠프에서 꾸준히 코칭스태프에 신임을 얻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타워스 단장은 "우리는 네가 충분한 운동을 하고, 정상 컨디션을 유지한 채 캠프 후반에 합류해 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훈련이 아니라 실전을 뛰어야 하는 WBC 대회 때 개인이 충분한 운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상 압박이었다.

'꼭 가야 하나…'.

박찬호는 다시 한번 고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울을 한번 보고는 선뜻 짐을 챙겨 태평양을 건넜다. 그는 "팀의 에이스도 좋지만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1라운드가 벌어진 도쿄에서부터 투수진을 리드했고, 후배들을 챙겼다. 대만과의 1차전을 앞둔 인터뷰 때는 회견장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청하는가 하면, 4일 한.일전 전날에는 일본까지 응원 온 한국 선수 가족들을 선수와 함께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박찬호와 친분이 두터운 토미 라소다 LA 다저스 부사장도 참석했다. 라소다 부사장은 그 자리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이 쌓은 승부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일본 선수들은 물론 모든 도쿄 시민은 일본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빈틈이 생길 거고, 그게 바로 한국이 이길 수 있는 이유다. 위축되지 말고 공격적인 야구를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박찬호를 메이저리그의 톱스타로만 알았던 후배들은 그 자리를 통해 박찬호를 친근한 형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끈끈한 정도 생겼다. 이튿날 일본에 3-2로 역전승한 뒤 박찬호는 김인식 감독에게 "선수들과 기분 한번 풀겠다. 제가 주선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 자축파티를 했다. 박찬호는 대표팀의 든든한 형님, 사려깊은 선배로서 기둥노릇을 하고 있다.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팀의 기둥이었던 홍명보를 보는 듯하다.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큰 형님' 박찬호는 김인식 감독이 '휴먼 야구'를 펼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라운드에서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미국과 멕시코를 상대하게 되자 박찬호는 서재응.김병현.김선우 등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후배들과 함께 상대팀 분석과 조언에 앞장섰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전력분석팀이 따로 있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자신이 10년 넘게 상대해온 타자들의 약점을 전수했다. 이 덕분에 손민한.정대현.전병두.오승환 등 국내파 투수들은 메이저리거를 단 한번도 상대하지 않았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약점을 파고들 수 있었다. 박찬호는 "애리조나에서는 물을 많이 마시라"고 조언하는 등 몸관리에 대한 노하우도 각별하게 챙겼다.

박찬호는 지금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뛰는 메이저리그 톱스타가 아니라 동료와 힘을 합쳐 조국의 명예를 위해 뛰는 태극전사다. 그의 역할은 항상 선발투수였지만 박빙의 승부였던 대만전.일본전.멕시코전에서는 모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승리를 지켜냈다. 박찬호는 "국가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1994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통산 100승을 넘어서며 한국 야구의 기상을 미국에 떨친 '코리안 특급' 박찬호. 그는 한국 야구의 든든한 기둥이다.

애너하임=이태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