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고민하는 후진타오 주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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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막을 내린 6자회담의 성과를 둘러싸고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고 있으나 회담의 성공 여부는 시간과 선택이라는 변수들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제2차 6자회담이 개최되는 시점에서 북핵 위기에 대한 보다 명확한 윤곽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미 시간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즉 북한이 핵무장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급기야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든가, 혹은 6자회담을 포기하고 핵무장 선언을 채택할 경우 한반도 안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핵무장 선언을 실행에 옮길 경우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모종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북핵 문제는 드디어 마지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관련국들의 선택만 남아 있다. 특히 중국의 선택이 북핵 문제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후진타오(胡錦濤) 정부 등장 이후 중국의 제4세대 지도층이 직면하고 있는 최초의 외교안보 도전인 만큼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 시간과의 전쟁 돌입한 6자회담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 대다수의 국민과 국제사회의 여론도 미국과 북한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이번 위기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불가침조약 혹은 협약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소위 적대적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파키스탄 식과 같은 핵 억지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미국과 북한 간의 접점을 모색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미국이 불가침조약보다 대북 안전보장을 문서화하고 선 핵포기 원칙을 일부 수정, 병행포기 방식을 채택할 경우 대화의 틀을 유지하면서 해결책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조기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기가 원만하게 풀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무장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는 기본적인 동기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핵무기 계획을 외교협상용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6자회담과 별도의 북.미협상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고수하고 있는 핵심적인 원인은 바로 체제 보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을 이미 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북한은 그들의 유일한 군사적 동맹국인 중국이 북한을 더 이상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이미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제4세대 지도자들은 1993~94년의 제1차 북핵 위기와는 달리 작금의 제2 북핵 위기를 일종의 마지노 선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발전, 북한 국경선 근방에 집결되어 있는 국영기업들의 조속한 폐기 여부, 인민해방군의 군사혁신화, 그리고 소수민족의 갈등구조 해소 등 굵직한 국책사업들을 비교적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한 완충지대가 필수적이다.

*** 北核 방치냐 동맹 재구축이냐

그러나 이러한 완충지대를 위협할 수 있는 1순위 문제가 바로 북핵 문제인 만큼 중국 정부와 인민해방군은 머지않아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즉 중국식의 스텔스형 대북 제재를 포함, 50년 동안 지속해온 동료 공산주의 국가와의 동맹관계를 재구축하느냐, 아니면 북한의 핵무장을 방치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번 북핵 위기 과정에서 미국의 결심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더 중요한 변수는 바로 중국의 선택이다.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계획을 발표하기 전만 하더라도 중국 당국의 대북 지지도는 절반을 약간 넘은 51%였다면 현재는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49%로 수정됐다고 본다.

물론 중국 당국의 정확한 의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북한이 끝까지 핵무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중국 당국은 2%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로 이 문제를 북한이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민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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