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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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요/발 아래 지옥도 없고/머리 위엔 오직 하늘만 있는//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요/죽이지도 않고 죽을 일도 없는//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요/탐욕 부릴 필요도 없고/인류가 모두 형제가 되는…."

깔끔하고 담백한 피아노 선율을 타고 흐르는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은 세 가지가 없는 세상을 그려본다. 종교.국가.사유재산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무신론.무정부.반(反)자본주의적 메시지가 담긴 1970년대 초 운동권의 노래다. 반전론자들이 가장 많이 부른 노래, 비틀스의 나라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다.

이 철학적 메시지의 가사와 상상(想像)이란 모티브가 레넌의 아내 오노 요코(小野洋子.70)의 창작물임이 확인됐다. 오노가 최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2세의 오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피란지에서 굶주림에 울던 남동생을 달래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하나씩 꼽으며 "상상해봐"라고 했다. 전쟁의 공포와 궁핍 속에서 피어난 상상은 71년 레넌과 오노의 베트남전 반대 '이매진'으로 이어졌다.

80년 레넌은 한 미치광이의 총에 숨지기 이틀 전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그 고백은 레넌의 죽음 속에 묻혀버렸다. 그의 죽음으로 '이매진'은 두번째 세계적 히트를 기록했다.

'이매진'싱글판은 2001년 9.11 직후 세번째 히트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 우여곡절을 BBC가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나섰고, 오노는 스스로의 정당한 몫을 비로소 털어놓았다.

오노가 그동안 자신의 몫을 내세우지 않아온 데는 많은 세인, 특히 영국인들의 비난을 견뎌야만 했던 탓이 크다. 행위예술가 오노는 67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우뚝 선 넬슨 제독 동상 주변 대형 사자상을 흰 천으로 덮어버렸다.

반전의 메시지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검은 머리칼의 광녀(狂女)'로 불렸다. 69년 레넌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비틀스를 해체시킨 마녀'로 일컬어지다가 80년 레넌이 횡사하자 '악처'로 매도됐다.

레넌 사후 23년, 오노는 전위미술가로 당당히 홀로 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로댕 갤러리 전시회를 통해 한국에서의 제몫 찾기도 한창이라고 한다. 고희(古稀)를 버텨온 그녀의 예술혼은 샘솟는 상상력일 것이다.'이매진'의 상상은 불온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