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씨가 권하는 우리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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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 말 꿔다 쓰는 것도 조국 근대화라 할 수 있습니까."

통일운동가 백기완(71)씨가 사자후를 토하자 방청석에서 "옳습니다" 소리가 터졌다. 1일 오후 9시, EBS에서 방영한 '백기완의 굽이굽이 나의 인생'은 영어에 오염된 한국말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강한 주체의식으로 시청자들 가슴을 파고들었다.

"인류문화사에서 빛나는 별이라 할 수 있는 우리말을 놔두고 왜 남의 나라 말로 범벅을 하고 사느냐"는 백씨의 일갈은 특히 젊은이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날 백씨는 한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써서는 안될" 영어 10가지를 예로 들어 '우리말 쓰기'를 권했다. 첫째는 사람들이 응원 구호로 많이 외치는 '파이팅'.

힘내서 싸우라는 뜻을 지닌 파이팅에 대해 백씨는 "원래 우리 민족은 그런 호전적인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며 차라리 '아리아리'를 쓰자고 말했다.

아리랑의 앞 대목인 '아리아리'는 '여러 사람이 길을 내고 만든다'는 말로 백씨는 "가장 예술적이고 도덕적인 우리 민족다운 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흔히 쓰는 '키'는 열쇠, '쇼핑'은 장보기, '채팅'은 속살대기, '채널'은 결눈, '와이프'는 아내, '비전'은 하제, '아이디'는 덧알기란 아름다운 한국어를 쓰자고 제안했다.

또 "결정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말"로 '바이바이'를 들었다. '잘 계세요'란 뜻의 "잘 잘"이란 고운 말이 있는데 왜 멋대가리 없는 외국어를 쓰냐는 얘기다.

그는 "애 낳을 달이 되면 미국에 가고, 혓바닥까지 수술하며 영어를 쓰는 건 비자주화의 문화적 반영"이라며 "이 할아버지가 피눈물로 호소하는데 오늘부터 1주일에 딱 한 번씩이라도 영어를 멀리하는 운동을 하자"고 강조했다.

'백기완의 굽이굽이 나의 인생'은 17일까지 매주 월~수 오후 9시에 방송된다. 2일 제5강 '문학과 문학인'에 이어 제6강 '문학, 변화의 물꼬', 제7강 '우리의 전통 미학', 제8강 '진짜 미인 너울내와 진짜 남자 새뚝이' 등 12강까지 계속된다. 02-526-254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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