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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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무송은 현청을 나오는 길로 서문경의 생약 가게를 찾아갔다. 가게 근처로 가니 각종 생약 냄새가 풍겨나왔다. 무송은 문득 그 생약들 중에 비상 같은 독극물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송이 가게로 불쑥 들어서자 계산대에서 돈을 세고 있던 부이숙이 무송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 가게 주인장은 어디 있소?"

무송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가게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

"그럼 집에 있는 거요?"

무송이 생약 가게 뒷문으로 해서 서문경의 집으로 쳐들어갈 자세를 취하였다.

"집, 집에도 없습니다. 서문대인은 왜 찾으시는 거요? 약을 사게요?"

부이숙이 무송을 가로막다시피 하며 황급히 말했다.

"그래 약을 사려고 한다. 독약을 사서 그놈을 죽이려고 한다."

무송이 갑자기 말투가 거칠어지더니 부이숙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틀어쥐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캐엑 캑, 왜 이러시오? 이거 놓고 말로 합시다."

"너희들은 말로 해서 통하는 놈들이 아냐. 내 주먹 맛을 좀 봐야 해. 내 주먹이 어떤 주먹인지 알지? 호랑이도 거뜬히 때려눕힌 주먹이야."

무송이 한 손으로는 부이숙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쥐어 금방이라도 부이숙을 내리칠 듯이 윽박질렀다. 부이숙은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며 숨이 넘어가는 양 헐떡였다.

"대, 대장 어른, 나는 나리에 죄 지은 일이 없는데 왜 이러시오?"

"너 말 잘했다. 그래 너는 나에게 죄 지은 일이 없지만 네 주인은 나에게 죄를 지었단 말이지?"

"난 모르는 일이오. 나는 그저 한 달 일해주고 은 두 냥 받는 직원일 뿐이오. 주인님이 하시는 일을 어찌 나 같은 것이 알 수 있겠소?"

"주인님 하시는 일은 모르겠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무송이 부이숙의 목덜미를 더욱 힘을 주어 틀어쥐며 와락 추켜올렸다.

"캐엑 캑, 아이구 사람 죽네. 주, 주인은 방금 전에 친구가 찾아와서 사자가 술집으로 갔어요. 이건 정말입니다."

무송은 부이숙을 밀쳐두고 사자가로 성난 곰같이 달려갔다. 부이숙은 텅 빈 자루처럼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무송이 사자가 다리 옆을 지나가니 술집이 하나 있었다. 이 술집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서문경이 현청 관리인 이외전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외전은 현청에서 소송 사건 담당 관리로 소송 당사자 양편에 진행 상황을 약간씩 흘리면서 돈을 챙기는 자였다. 이 당사자에게 가서는 저쪽 당사자를 이길 수 있는 방도가 있다는 식으로 하여 돈을 뜯어내기도 하였다.

이외전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바깥으로 소식을 슬쩍슬쩍 흘리는 자라는 뜻으로 '외전(外傳)'이라 한 것이었다.

무송이 두 사람에게로 슬며시 다가가 엿들어 보니 이번에도 이외전은 서문경에게 '외전'을 해주고 있었다.

"현감이 무송이 제출한 고소장을 돌려주었네. 허허, 잘 됐지 뭔가. 고소장이 수리되었으면 자네 골치 좀 아팠을 거야. 고소장 수리를 막는 데 내 공로가 크다구. 그걸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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