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 줄기를 캐야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와 전경환씨의 비리수사는 서울·인천·대구지검과 남부·울산지청 등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이 같이 전국의 검찰력을 총동원한 듯한 수사는 처음 있는 일로 그 동안 全씨의 비행이 얼마나 폭 넓게,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는가를 웅변으로 입증하는 셈이다.
이번 사건 수사는 처음 있는 규모의 방대함 외에도 검찰이 종전과는 달리 상부의 눈치, 외부 기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수사착수는 검찰력의 개입을 재촉하는 여론에 밀린 듯한 인상이었지만 그것도 이 사건이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볼 때 사법 심판에 앞서 여론의 여과를 거치는 과정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전씨가 느닷없이 출국, 사태를 증폭시켜 검찰수사가 1주일 쫌 앞당겨진 셈이라는 검찰간부의 설명도 그런 점에서 수긍이 간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지나치게 여론에 매달리는 수사를 하는 듯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범죄의 줄기를 잡고 가지와 뿌리를 캐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벌성은 관계없이 신문에 나면 말이 안 되더라도 수사착수부터 하고 본다는 식이다.
검찰 고위간부는 이번 사건 수사야말로 「독자적」이란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대형 시국사건의 감초격이던 「관계기관 대책회의」도 이젠 없어졌고, 그 흔한 「지침」도 내려온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상에 먹칠을 했던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와는 판이한 결과가 나올 테니 두고 보라고 검찰은 장담하고 있다.
그 동안 권력의 온상 안에서 향일성 수사만 해오던 검찰로서는 수사 결론을 내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아도 좋다. 검찰 내부라도 수긍할 수 있는 결과라면 좋겠다. 검사들 스스로 최선을 다한 수사를 했고 소신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국민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일선 검사의 이 같은 자부심은 이번 사건에서 새 검찰상을 기대하는 시민 모두의 소망인지도 모른다.
신성호 <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