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신뢰가늠 저울대 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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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경환씨의 새마을 사건이 예상했던 대로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사직당국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이미 언론에 의해 연일 대서특필되어 한 달여 남은 13대 총선의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었다.
이 사건은 시기가 다소 앞당겨졌고 때마침 불고 있는 자유언론 무드에 편승해 확산 속도가 빠를 뿐 시대적 상황이나 각 정치집단의 이해에 입각해 볼 때 예정된 코스를 밟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을 전두환 전대통령의 제5공화국 입장에서 봐주려는 세력이 없고 지난 7년 간 전경환씨가 저지른 행위 자체가 워낙 일부의 동정이나 비호마저도 받을 여지가 없을 만큼 이미 언론이나 소문에 의해 나쁜 선입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전경환씨는 절해고도에 내동댕이쳐졌고 왜 그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와 그를 응징하는 방법에 관해 분분한 논란이 있을 뿐이다.
이 사건에 관해 부담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 자신이다. 노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과정이나 집권 후의 각종 정책표방에서 제5공화국과의 「승계」와 「단절」을 제6공화국의 기조로 제시해 왔다.
흑자경제의 지속, 민족외교와 자주국방,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가 승계의 대상이라면 지도자의 도덕상 회복, 깨끗한 주변관리, 지난날 잘못에 대한 의법 처리는 단절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 주변에서는 집권 후 노대통령이 부닥칠 최초의 두 가지 시련으로 처남인 김복동씨와 동서인 김진호씨의 정치참여 배제 및 전경환씨 문제의 처리를 꼽았었다.
이 두 가지가 국민이 납득할 만큼 흔쾌히 해결되지 않고는 국민들로부터 리더십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승계」의 대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노대통령이 전 전대통령과 어떻게 다른가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어떻든 제5공화국과의 「창조적 단절」을 표방, 실천하지 않으면 13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기조에서 그는 우선 처남·동서문제를 해결했고 제5공화국을 상징하는 권익현, 권정달 의원과 전 전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으며 전경환씨 문제에 관해서도 처음부터 「법대로 하라」는 입장을 취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선거공약에서 『제5공화국에서 일어난 일도 책임질 사람은 반드시 책임지고, 처벌될 사람은 나중에라도 처벌되게 하겠다』고 했으며 서울 유세에서는 「새마을」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바 있다.
결국 노대통령은 전 전대통령의 통치행태 중 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부분은 과감히 쇄신하고 힘의 중심을 송두리째 자신에게 옮겨오게 하는 것을 「창조적 단절」의 요체라고 보는 것 같다.
집권 후 비록 떠들썩하게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노대통령이나 그의 주변에서는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여론의 전면에 부상시킨 국가원로 자문회의의 무력화 작업, 전 전대통령이 관례화 시켰던 각종 의전 절차의 과감한 폐지, 권위주의 정치스타일을 탈피하려는 갖가지 노력을 해왔다.
새마을 문제에 관해서도 청와대 측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전 전대통령의 수사요구를 언론에 공개해 이 문제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을 기정 사실화했다. 그리고 성고문사건·박종철군 사건과 같은 공권력행사의 난맥상을 되풀이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어차피 터질 사건이라면 당당히 대응해 「창조적 단절」의 결의를 보임으로써 총선에서 받을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나 정부는 최근의 언론보도와 여론이 그들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소 다르게 나가고 있는데 대해 당혹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이 사건의 진실을 보도하는 측면에서 차츰 「감정적 차원」으로 논조를 바꾸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노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전 전대통령과 제5공화국의 잘못을 과감히 쇄신했다는 이미지를 원하는 것이지 이 사건이 전 전대통령과 제5공화국을 깡그리 부정하는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누가 보더라도 노대통령과 전대통령은 정권 획득 과정을 볼 때 한 뿌리의 두 나무고,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전임대통령이 동생의 비행과 함께 매도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 자신 5년 단임의 대통령으로서 일련의 쇄신책이 전임대통령과의 파워 게임으로 비쳐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치구상을 밀고 갈 팀컬러 구축이 전 전대통령 세력의 제거로 해석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보복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새마을사건에 대한 노정권의 기본 입장은 △전경환씨의 범법행위는 사실에 입각해 철저히 파헤치되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보복적 분위기는 경계하며 △어떤 경우든 불똥이 전 전대통령에게까지 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집약된다.
아울러 수사과정을 철저히 공개해 양식 있는 국민들로부터 『그 정도면 애썼다』는 반응을 얻을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번 탄력이 붙으면 제동이 걸리기 어려운 언론의 경쟁보도 속성, 선거전에서 야당에 의해 난무할 각종 유언비어, 2·12총선에서 정래혁 사건이 몰고 왔던 회오리처럼 아무리 냉정과 이성을 호소해도 힘센 자를 미워하는 유권자의 성향 등으로 인해 이번 사건은 어떤 예기치 않은 정치적 파문을 일으킬지 가늠하기 어렵다.
노대통령은 『이제 세상사는 6·29의 연장선상에서 민주화로 갈 수밖에 없으며 과거와 같은 권력 남용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말한바 있다. 그런 뜻에서 노대통령은 이번 새마을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공권력의 신뢰를 얻고, 그 자신 자계의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인 것 같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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