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과 단절…세력 재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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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13대 국회의원선거공천은 한마디로 제5공화국과의 단절을 통한 새로운 세력재편작업으로 보여진다.
국회의원선거구가 92개에서 2백24개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역 지역구출신 의원이 28명이나 공천에서 제외되고 특히 대표위원을 지낸 권익현 의원, 창당사무총장 권정달 의원 등 군출신 핵심의원들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은 민정당 기존세력판도의 근본적인 수술이다.
실상 두권씨를 탈락시킨 방법이나 현역의원 공천체외에는 「파워게임」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대표위원·사무총장을 지냈던 인물들에 대한 적절한 「예우」가 있을법한데도 철저한 보안속에서 정보를 흘리며 기습적으로 뒤통수를 치는 식으로 밀어낸 것은 공천탈락이라기보다 「제거」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들을 제거한 원인과 서울을 중심으로한 당내 일부 온건파 의원들을 갈라낸 것은 같은 공천기준이라곤 설명될 수 없는 점이 있다.
이번 공천심사과정을 통해 제5공화국 아래서 중간보스급 세력으로 성장했던 인물들은 탈락되거나 세력을 잃게됐으며 이와함께 전정권의 인맥도 대부분 끊기게됐다고 볼 수 있다.
민정당에는 새로운 인사가 대폭 충원되고 그에따른 새 인맥이 구성되게 됐는데 이들은 노태우 대통령과 가깝거나 지난 대통령선거를 통해 맺어져 사실상 「노중심체제」가 형성됐다고 할수 있다.
지난번 조각때는 어렴풋이밖에 나타나지 못했던 새 정권의 구도가 보다 뚜렷이 나타난 셈이다.
두권의원의 탈락, 구정권과의 단절이란 공천과정만을 보고 민정당의 문민정치약속이 이뤄진다고 보는 것은 성급할 것 같다. 특히 문민정치를 강하게 부르짖었던 봉두완 의원 등이 탈락된 것은 공천심사기준이 문민정치 확대에 있지않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두권의원의 탈락은 어느 의미에서 파워그룹내의 의견을 존중했다는 해석도 있다. 파워그룹내에서는 민정당에 참여한 일부개혁주도 파워엘리트의 행동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들의 교체는 필요했을 것이지만 파워그룹 전체의 영향력이 감소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12대에서 민정당의 지역구의원 중 18명이 군출신이었는데 이번에 두권의원, 김상구·박익주 의원 등 4명만 탈락되고 새로 정호용·허삼수·이학봉·정동호씨 등 9명과 전국구에서 유학성 의원 등 4명이 지역구로 나서는 등 무려 14명이 늘어 모두 28명이 됐다.
앞으로 전국구 기용분까지 합치면 군출신은 30명이 넘을 것으로 보여 여전히 당내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천을 통해 민정당의 보수적 성격이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정당공천자를 구성한 것은 군출신 이외에 크게 분류해서 중소기업 경영인, 교수 등 전문지식인, 공무원 출신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특히 기업경영인들이 가장 많이 들어와 민정당구성의 중심적인 부분을 이루게 됐다.
이들의 상당수는 이미 통대의원을 지냈거나 정치권 인사들과 연을 대고 있어 「권력 유착형」이란 시각이 없지않다.
새로운 인물이란 간판을 달고 서울등 대도시에 출전하게된 교수·언론인등도 정치지향성이 강한 안정·보수성향의 중산층 인사들이 많다.
당초 민정당이 화합정치, 세대간의 조화 등을 공천기준으로 내세웠지만 지극히 산술적인 측면을 제외하곤 별로 원칙이 충족되지는 못한 것 같다.
우리정치의 독특한 인물충원방식인 중앙에서 공천만 따면되는 「하향낙점식」방법이 그대로 준용됐기 때문에 저국적인 조화나 지역기반보다 권력 내부의 연분이 더 작용했다는 비판을 면치못할 것 같다.
전청와대비서관·내무공무원 등이 많이 기용된 것도 그렇고 그밖의 기업인과 교수·지식인들도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든 권력주변과 가졌던 인연이 공천의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보수적인 중산층 기업인, 군출신 기용과 함께 민정당은 이번 공천을 통해 민관식·김재순·박준규 구공화당의장·김세배·오유방씨 등 구공화당인사 등을 끌어들임으로써 「소보수연합」을 꾀했다.
전정권에서 통치상 가장 큰문제의 하나로 지목됐던 것이 권력핵심세력의 축소였다. 구여권을 모두 제거하고 신여권 내부에서도 권력의 정점을 중심으로 한 지나친 집중화경향이 오히려 집권층의 폭을 협소하게 만들었고 이로인해 권력배분을 둘러싼 여권내부의 갈등과 마찰이 적지않았다.
민정당은 지난 대통령선거를 통해 형성했던 안정지향의 보수계층을 망라함으로써 집권지지세력의 층을 두텁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민정당은 여성의 정치진출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번 공천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전국구 공천에서 상당히 배려될 것으로 짐작된다.
민정당이 이처럼 제5공화국인맥과의 단절을 통한 세력 재편을 꾀했지만 이것이 반드시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체제로 굳어질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 단임일뿐 아니라 전반적인 정치상황의 변화가 종전과 같은 일방통행의 권위적 체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내에는 온건파를 대표하는 이종찬·최영철 의원 등과 새로 당에 들어오는 정호용·허삼수씨와 유학성·이춘구 의원 등 군출신,
관료세력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새로 공천된 신진들의 정치성향이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지도 알수 없다.
때문에 총선을 거치고 난후 민정당의 모습은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체제로 변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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