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어머니의 '꽃샘 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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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왜 그러세요? 마음 좀 가라앉히고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전화를 받은 아내의 목소리가 상기됐습니다.

10여 분이 넘는 긴 통화 후 수화기를 놓고 아내는 다시 돌아누웠습니다.

"어머니랑 아주버님이랑 다투셨나 봐. 어머니가 또 혈압이 올라서 숨을 헉헉거리시네. 저러다 쓰러지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집엔 매년 한 번씩 따뜻한 봄 기운을 시샘이라도 하듯 집안을 휘젓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형님이 몇 년 전 형수와 이혼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살게 되었지요. 형님이 직업이라도 갖고 있을 때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막일을 하시며 어렵게 생계를 꾸리다 보니 세상의 모든 게 불만인 듯 집에만 오면 어머니 가슴을 후벼 파고 가십니다.

"엄마가 날 이렇게 낳아서 불만이고 엄마가 날 못 가르쳐서 그게 불만이고 이혼할 때 엄마가 못 막아줘서 또 불만이고 엄마가 아이들 저렇게 키워서 불만이고 형제들이 날 이렇게 방치해서 불만이고 내 얘길 들어주려 하지도 않아 불만이고…."

무탈하던 우리 집에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이나 어머니.아버지 생신 날이면 형님은 어김없이 요란스러운 폭풍우로 변합니다.

올 봄 또다시 산수유가 만발하고 매화와 벚꽃 비가 휘날리기 전에 또 한 번 시린 살을 도리고 간 꽃샘추위처럼 형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혼자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형님의 말 한마디에 고통스러워 하고 미안해 하고 죄스러워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형님의 생각은 언제부턴가 한자리에 머물러 버렸지요.

"나를 고통받게 하는 이들은 모두 나의 적이고 내 편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식구들 탓이다."

이제 봄이 왔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응달에까지 따스한 햇볕이 파고듭니다. 어머니 마음속 꽃샘 추위도 어서 물러가고 어머니 가슴에 동백꽃 한 송이가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육봉관(35.회사원.전북 김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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